장애인 가족인 나, 무릎 꿇지 않을 겁니다

[장애인 가족, 특수학교를 말하다] 동생과 같은 장애인이 '특수'하지 않은 사회를 꿈꿉니다

등록 2017.09.13 13:48수정 2017.09.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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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 주민토론회 자리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진 속 장애인 학부모와 함께 울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강서 특수학교가 설립되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장혜영씨의 기고글을 싣습니다. 이 글을 쓴 장씨는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튜버이자, 발달장애인 동생과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의 기획자입니다. [편집자말]
 ▲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지역 주민들에게 장애인 학교 설립을 호소하자, 설립 반대 쪽 주민도 무릎을 꿇었다.
▲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지역 주민들에게 장애인 학교 설립을 호소하자, 설립 반대 쪽 주민도 무릎을 꿇었다.신지수

지난 9월 5일 오후 7시 반, 서울시 강서구 탑산초등학교 강당에서 특수학교 건립에 대한 2차 주민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가 열린 곳에서 지근거리, 특수학교 부지로 선정된 옛 공진초 터가 있다.

현재 강서구 장애 아동들의 상당수는 집에서 2~3시간 거리의 타지역 특수학교로 매일 통학한다. 강서구 내 특수학교 수용인원이 적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3월까지 특수학교를 짓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특수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바로 그 자리에 난데없이 국립한방의료원을 세우겠다는 주민들, 정확히는 주민들에게 막연히 한방의료원의 꿈을 욱여넣는 국회의원이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강서구에 장애인이 너무 많다'거나 '장애인은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런 '뻔뻔한' 주장은 지난 7월에 열린 1차 토론회에 이어 5일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등장했다. 장애인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가까운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바란 죄(!)로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정을 받아도, 모욕을 받아도 좋으니 학교는 포기할 수 없다는 서러운 외침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그 자리의 수많은 반대 측 사람들을 생각하면 새삼 오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울어도 좋지만 이제 무릎은 꿇지 말자. 당당히 우뚝 서서 인상 쓰며 함께 싸워 이기자.

동정 혹은 배제, 그렇게 장애인은 지워진다

한국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격리와 차별은 매우 뿌리 깊다. 기실 거리에도 학교에도 직장에도 장애인들은 이미 격리될 대로 격리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거리가 평범하게, 장애인이 보이는 거리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외국에 나가서 장애인이 '너무 많아서' 놀란다고 한다. 그제야 한국에 장애인이 너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사람도 있지만, 그 나라에 유난히 장애인이 많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단다. 기가 차는 얘기다. 상황이 이러하니 장애인을 어떻게 평범하게 대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지만, 격리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격리된 채 방치되거나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사회'에 얼굴을 내밀면 그것만으로 불쾌해한다. 심지어 그 불쾌함을 주저하지 않고 표현한다. '왜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냐'는 질문은 정말 답이 없다.




사회가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하여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사람을 능력으로 서열화하고 등급을 매겨 차등대우를 하고, 또 그런 취급을 받는 것에 우리 사회 모두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까. 어떤 환경에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든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엄과 권리가 있다는 발상이 우리 생활에 내려앉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동생은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이다. 동생이 13살 무렵 장애인 수용시설에 보내지기 전까지 우리는 시골 마을에 함께 살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너무나 바쁘셨기에 나는 늘 동생과 붙어 지냈다. 내 친구 중에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호의에 기대는 것'이 무엇인지 어릴 때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말로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서 동정심을 사는 것'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돌아오는 적의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에서 장애인을 어떻게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른이건 아이건 아무도 없었다. 동정이 아니면 무시, 혹은 배척이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생존본능이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불쌍하게 구는 법을 배웠다. 불행히도(?) 나는 공부를 잘 했기에 또래 친구들에게 동정을 사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거의 비굴해져야 했다. 야, 나는 진짜 불쌍해. 진짜 불쌍하다구. 비참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장혜정, 장혜영 자매
장혜정, 장혜영 자매장혜영

동생이 시설로 간 이후, 엄마는 종종 시설 종사자들과 통화할 때면 연신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동생이 무슨 잘못을 했나 싶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동생이 당신 곁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머물 때도 늘 죄송하다고 하셨다. 동생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죄가 아닌데 죄스러워하셨다. 웃기는 건 사람들이 그 사과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잘못하는 경우에도 말이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에서조차 장애인을 위한 권리를 요구하는 건 매우 힘들었다.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의 '선함'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굽신거리는 것이 내가 참석했던 학부모회 내용의 절반 이상이었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들어온 시설이지만, 언젠가 시설에서도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시설에는 사회에서 밀려난 장애인들의 기나긴 대기 리스트가 있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높여 권리를 주장하면 종사자들이 아니라 무려 다른 학부모들이 이구동성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여기가 싫으면 데리고 나가세요." 끔찍하지 않은가.

내가 어른이 되고, 시설에서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사회를 마주할 때도 비슷한 일은 늘 있다. 식당에 갈 때도, 가게에 갈 때도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왠지 미안해하며 계속 주변을 살피는 태도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혹은 자기들이 보인 과도한 호의에 대한 과도한 리액션을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그에 호응하지 않으면 당황하고 심지어 기분 나빠 한다.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상상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격리가 당연한 세상에 인간의 평등함은 깃들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30년간 한 살 터울 발달장애인의 가족으로 한국사회를 살아오며 깨달은 것이다. 격리가 만연한 세상에서 아무리 평등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경험할 수 없는 평등은 평등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 그렇기에 당당한 싸움

나는 무릎 꿇은 학부모들의 모습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한, 이내 사과하는 버릇과 맞닿아있는 생존에 관련된 오래된 슬픔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나는 믿고 싶지 않다. 우리는 불쌍해지는 것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권리를 위한 투쟁을 관철해나가야 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9일 오후 개인 페이스북에 "특수학교를 특수하게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특수한 일"이라며 예정대로 특수학교 설립을 진행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좋다. 이 싸움은 제아무리 이기심을 소리높이더라도,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 없는 시대를 우리가 열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싸움이다. 서울시교육청과 강서구의 장애인 학부모들, 그리고 동시대 시민들인 우리 모두의 싸움이다.

나는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다. 투쟁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우셔도 좋다.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통이 심장을 옥죄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릎은 꿇지 마시라. 고개를 바짝 들고서 당당히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이 살아갈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이기심을 앞세우고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파렴치하고 낡은 사고방식과 그 대변자들이다.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제작자 장혜영(31)씨와 동생 장혜정(30)씨.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제작자 장혜영(31)씨와 동생 장혜정(30)씨. 김예지

[관련 기사] 장애인 가족, 특수학교를 말하다
특수학교 다니는 딸의 친구들, 3시간 버스 탑니다
덧붙이는 글 한편으로 장애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방법이 오직 특수학교를 더 짓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학교에 통합학급을 늘리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런 부분을 세세히 논의하지는 않겠다. 이미 짓기로 한 학교조차 이기심으로 막아 세우는 사안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특수학교 #강서구특수학교 #장애인인권 #이기심 #공적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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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 안 가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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