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회담 마치고 발코니 나온 북-미 정상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첫 단독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발코니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선언했다. 북한과 미국의 '적대'가 동북아시아 갈등의 진원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동북아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말레이이시어로 '평화와 고요'를 뜻하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평화와 번영을 향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북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남한과 북한이 1948년에 각각 미국과 소련의 후원 아래 정부를 수립하면서 남북간, 그리고 북미간에 적대가 본격화한 지 70년 만에 드디어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는 동북아에서 반쪽만 남은, 그럼에도 자칫하면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곤 했던, 냉전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다.
한소 수교, 한중 수교와 함께 북미 수교, 북일 수교까지 이뤄졌다면...1990년 한소 수교와 1992년 한중 수교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배후국들인 중국·소련과의 이념 적대는 깨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991년에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까지 했으나, 미국은 북한과 수교하지 않았고,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한중 수교, 한소 수교와 함께 북미 수교, 북일 수교까지 이뤄져 남북과 미일중러간 '교차 수교'가 완성됐다면, 북한에 대한 안보위협이 약화되면서 핵 개발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92년 1월 뉴욕에서 한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에 김용순 당 비서를 파견해, 북미 수교를 전제로 "주한미군의 위상·역할이 바뀐다면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전달했으나, 허사였다. 소련 등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북한도 곧 붕괴할 것이라는 오판 속에,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려하지 않았다.
18년 전인 2000년 말에 북미는 그 어느 때보다 수교를 위해 깊은 단계에 들어갔었다. 그해 6월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계기로,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워싱턴과 평양을 '상호 특사'로 방문해 북미 공동코뮈니케 합의를 끌어내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했으나, 그 무렵 미국 대선에서 반북 성향의 아들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나는 탄식했다. 단언컨대,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에 갔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다"며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 그 한쪽의 대통령으로서 정말 슬펐다"(<김대중 자서전2>, 381쪽)고 통탄했다. 실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됐다면, 핵 문제 등 '북한 위기'가 해소되고 한반도에 이미 새로운 시대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로부터 18년, 남북한 분단정권 수립부터 따지면 70년이 지난 뒤에, '비주류 이단아'인 트럼프 대통령에 와서야 미국은 실질적으로 북한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가 이념을 앞세우는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이 아닌 '장사꾼' 출신이기 때문에 이같은 반전이 가능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그렇게 부르짖었던 CVID 명시 안돼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이번 북미 정상간 합의물은 예상보다는 약한 것이었다. 미국이 그렇게 부르짖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sation)는 명시되지 않았고,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sation)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다. 전체적으로 이번에는 '최소 공약수'를 도출한 뒤,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간 고위급 회담을 추가로 개최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김 위원장과) 우리는 여러 번 만날 것"이라며 후속 정상회담을 여러 번 개최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북미 수교로 가는 길도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수교에 대해 "빨리하기를 바라지만, 시기상조"라고 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발언과 종합해보면, 북미 수교는 비핵화의 최종 시점에 이뤄질 것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이는 북미 수교는 미국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럼에도 '관계의 변화'와 이 변화의 시작인 '실체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 의미는 자못 크다.
지난 3월 6일 평양에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만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의사를 밝히면서 "대화의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했다.
'독재자', '살인자' 김정은과 대좌해 공동성명... '한미훈련 중단' 파격 선언까지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김 위원장을 '대화의 상대'로서 진지하게 대했다. 전 세계에 '독재자', '(이복)형과 고모부를 죽인 살인자'로 인식돼 있는 김 위원장과 마주 앉아, 공동서명까지했다.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도 그에 버금가는 상징이라 할 만하다. 합의서에 명시된 '대북 안전 보장 제공'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로서, 북한이 세계 최대 규모인 키리졸브 훈련 등 한미연합 훈련을 미국이 가하는 실질적인 안보위협으로 인식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개인적인 태도에서도 북한을 인정하고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군복차림으로 거수경례하는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에게 역시 거수경례로 답했다. 단독회담 인사말 중에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김 위원장에게, 즉각적으로 "옳은 말씀"(That's true)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과거의 그릇된 편견과 관행'은 북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도 수용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사실상 70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대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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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이단아' 트럼프라 가능했던 북미의 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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