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사는 게 바빠,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할매는 60대에 허리가 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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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사는 게 바빠,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할매는 60대에 허리가 굽어버렸다. 난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로 시작하는 노래가 싫었다. 울 할매에게 굽은 허리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손주 여덟이 결혼을 할 동안 굽은 허리 때문에 바닥에 끌리는 한복 차림을 남들에게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할머니는 식장을 찾지 않았다. 오랜 시간 굽은 허리는 다리 통증을 가져왔고 더 이상 일반 병원에서는 그 어떤 치료도 무의미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요양병원은 할매가 잠시라도 통증 없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입원 초기에는 옥상정원에 산책도 가고, 면회를 가는 가족들과 좁은 병실이 아닌 넓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통증은 심해져 갔고 움직이는 반경은 좁아만 갔다. 이제 할매가 당신 의지로 침대를 벗어나는 유일한 활동은 병실 안 화장실에 가는 것뿐이다. 성인 걸음으로 1초면 되는 그 거리를 난간들을 잡고 한 발 한 발 온 에너지를 쏟아야만 가능한 도전이 되어버렸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이 울리면 할매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했다. 화장대 앞 작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불경을 읽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을 쫙 바르고 한 올 한 올 빠트리지 않고 모아 올려 핀으로 고정하면 할매의 쪽진 머리는 완성되었다.
젊은 시절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 숱을 치고 팔았다는 할매는, 이제는 다 빠져버려 힘을 잃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칼에 속상해했다. 내가 사 드린 작은 핀들을 아무리 꽂아도 머리칼들은 할매의 마음은 나 몰라라 삐죽 삐죽 나와 버렸다.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할매는 머리를 싹둑 잘랐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여러 명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할매의 긴 머리는 민폐였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건 할매가 살며 지킨 또 다른 자존심이었다. 할매는 90년간 지켜온 단정함의 자존심을 버리고 민폐를 끼치지 않는 자존심을 택했다.
할매가 머리를 자르던 날, 그 모습을 지켜봤다는 막내 고모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일을 전해들은 나도 눈물이 났다. 매일 아침 머리를 만지던 할매가 생각났고, 내가 사다 준 동백기름을 좋아하던 할매도 생각났다.
일주일에 한 번 병실 밖을 벗어나는 외출 아닌 외출은 목욕날이다. 목욕은 정해진 날에 정해진 순서대로 루틴하게 진행된다. 6층에 있는 할매는 목욕을 하러 휠체어에 앉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에 있는 목욕실까지 간다. 빠른 목욕을 위해 미리 옷은 홀딱 벗고 가운을 걸치고 휠체어에 오른다.
한번은 면회를 갔는데 하필 그날이 목욕날이었다. 활짝 열린 병실 안 할매가 옷을 막 입으려는 그 순간 내가 들어간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요양 보호사는 급하게 커튼을 쳤다. 열린 병실 문 밖으론 옆 방 할아버지들도 지나다니고 의사들도 지나다니고 문병객들도 지나다닌다. 너무 속상했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할매에게 소홀히 할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더 속상했던 건 아무렇지 않다는 할매의 태도였다. 할매가 울 할매가 아닌 것 같아 슬펐다. 이곳에서 할매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할머니를 지켜드릴 수 없어서 너무 죄송했다.
할매의 방이 그립다는 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