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2020년 3월 1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민중당 주최로 '코로나19 사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회견에는 학교비정규직노동자, 방과후강사, 택배노동자, 마트노동자, 요양서비스노동자, 장애인활동지원사 등이 참석했다.
권우성
그런데 과연 마트뿐일까. 한 달 전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던 강원도의 어느 리조트 1층 화장실이 기억난다. 볼일을 보기 위해 들른 화장실 맨 오른쪽 청소도구들을 보관하는 칸에 사람이 있었다. 무언가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쳤다. 전용 해변까지 소유한 대형 리조트에 청소노동자 한 사람 잠깐 쉴 공간이 없는 건가 잠깐 멈춰 생각해 보지 않았다. 봤으면서 못 본 척하고,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갔다. 돌아보니 그런 순간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서로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최근 몇 년 간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택배와 배달 주문이 급격히 늘어나며, 플랫폼 노동자들의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 현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해 여름 이 문제에 관한 연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한 배달 노동자가 인터뷰에서 했던 한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들은 내가 가면 음식이 왔다고 생각하지, 사람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반짝반짝 깨끗하고 보기 좋게 정돈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쉽게 얻을 수 있는 편리한 것들 속엔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이 숨어 있다. 그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별 세 개 그려 넣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새겨 넣고 싶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노동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붕어빵 기계로 찍어내듯 매일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마트 노동자의 일상 속에도 분명 짧지만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매대에 물건을 진열하며 주고받는 농담 속에서, 15분 쉬는 시간에 두는 체스 한판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퇴근 카드를 찍으며 수고했다고 주고받는 인사 가운데 서로를 향한 격려와 연민, 우정, 동료에 대한 예의가 깃들어 있다. 그런 것들의 힘으로 무채색처럼 보이는 하루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바라는 게 뭐예요? 이루어진다면요."
다시 <인 디 아일(In the aisles)> 영화 속, 크리스티안이 첫눈에 호감을 느낀 사탕류 담당 마리온에게 물었다. 마리온이 대답한다.
"전부요."
만약 누군가가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리고 정말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내가 바라는 건, 어디서나 사람이 우선인 세상이다. 모든 사람의 노동 현장이 안전하고, 효율성과 가성비가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
위험하고 고된 노동 현장의 사람들이 존중받고, 합당한 대가를 받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본사 직원과 하청 직원 상관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어디서나 적용되는,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는 세상. 그래서 더는 1m³ 좁은 철창 안에 사람이 한 달 넘게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외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