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면 내가 원하는 것에 좀 더 쉽게 다가설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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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각은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글쓰기에서 오감을 표현하면 글이 더욱 풍부해진다고도 했다. 나는 오감을 풍성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쓰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되고 싶었다.
또 사업을 하는 유명한 사람들을 보니 뚱뚱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자기 계발이나 성공하는 사람들이 다 운동을 강조하지 않는가? 언론에 비치는 모습은 예쁘게 치장하고 다듬은 모습이겠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마흔을 불혹의 나이, 오십을 지천명이라고 하던데, 나는 나이 들어서도 '성공'이라는 마케팅에 여전히 흔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운동과 성공의 상관관계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동과 사회적 성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몸은 9킬로그램 감량과 희미한 복근을 얻었다. 하지만, 그동안 사업적으로 보자면 매출은 하락했고, 법인 소유의 차량으로 몇 번의 교통사고가 있었다. 글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연재하는 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곤란했고, 생각만큼 많이 읽히지 않아 속상했다.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더 많이 쓸 줄 알았던 소설은 작년 한 해 완성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몸만 좋아졌을 뿐, 사업에서도, 글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운동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목표는 몸무게 이외에는 얻지 못했다. 운명이 비웃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네 사심을 내가 모를 줄 알았지?'
결국 사심을 들켜버린 나는 다시 순수하게 운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운동을 왜 멈추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원래 운동의 목적 중 하나는 몸무게 감량이었으니까. 하나만 달성해도 멈추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난 이미 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서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했다. 사업과 글쓰기 말고, 매일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운동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만약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고, 김연아처럼 노력한다면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사회적 성취가 있을까? 세상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성실하게 삶을 영위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김연아만큼 노력하며 금메달을 꿈꿨던 선수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노력이 재능을 넘어설 수 있다곤 하지만, 그건 노력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아닐까. 왜 누군가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만, 왜 누군가는 이루지 못하게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내가 본 것은 확증편향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 중에도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성공한 사업가 중에 배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성공한 사람의 노력이 빛날 뿐, 노력했다고 모두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운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