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한국외대·한예종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포스터의 모습이다.
소셜투어
포스트잇 두 장에 담긴 관심의 힘
5월 10일 오후 12시, 간담회 홍보를 위해 홍보부스를 운영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본관 앞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 옆에 유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은 포스트잇을 부착하기 위한 판을 세웠다. 17일 오후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건넸다. 홍보 부스에 몇 번 시선이 머무르곤 했지만, 관심을 두는 행인은 많지 않았다. 무관심이 반복적으로 스쳐 가는 동안 목소리를 높이는 게 어쩐지 겸연쩍기도 했다.
그러다 행인 두 명이 다가와 무슨 부스냐고 묻고, 포스트잇에 연대의 한 마디를 적은 후 떠나갔다. 판 위에 기억하겠다는 짧은 말이 적힌 두 장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그 작은 포스트잇 두 장이 꽤 반가웠다. 이후 부스를 정리할 때까지도 그 포스트잇들을 몇 번이나 흘긋거렸다. 부스에 다가와 포스트잇을 적기까지 걸린 3분 남짓의 시간, 다른 것보다도 그 시간, 그 작은 관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참사가 잊혀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만 좀 해라"라는 말도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러나 간담회를 홍보하면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음을 알았고, 관심이 힘이 된다는 걸 느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고, 한데 모으는 것. 그렇게 참사가 기억될 수 있게 하는 것. 간담회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했다.
끌어안고 울지 못한 부모의 한을 푸는 방법
간담회 당일이었던 5월 17일 오후 6시 40분경, 간담회 장소에 참가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비어 있던 강의실이 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안과 안도가 되었다. 간담회는 약 스물다섯 명의 참가자와 함께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참사 당시 상황과 이후 진행 과정, 이태원 특별법에 이르기까지 대담을 통해 여러 경험과 감정이 생생하게 공유되는 시간이었다.
고 유연주씨 아버지 유형우씨는 간담회가 열리는 강의실에 도착해 딸아이의 또래 학생들을 보니 딸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참사 직후 마약 수사를 이유로 주검을 만지지 말고 얼굴만 확인하라던 경찰을 떠올리며, "자식을 보내는데 끌어안고 울지 못했던 부모의 한은 진상규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딸의 죽음 이후 자책과 자괴감을 시작으로 신을 탓하며 불신하고 또다시 간절히 기도하던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사후세계를 믿지 않아왔지만, 이제는 동생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죽음 그 너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호주에서 일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온 고 김의현씨의 누나 김혜인씨를 비롯하여 평범한 생활을 하던 유가족들은 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
간담회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 보장,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법(아래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유가족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피해자의 권리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혹자는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뜯어내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이 말은 정당한 비판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직무 유기로 발생했기에 피해자에게는 국가로부터 보상받고 참사의 진실을 알, 마땅한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과잉 입법'이나 '재난의 정쟁화'라는 말로 법안 철회까지 요구하며 의무를 내팽개치고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특별법 제정"이라는 유가족의 말처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에서 유가족이 끝까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수단이고, 진실을 밝힐 희망이며, 그 자체로 피해자의 권리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가 부정당하고, 심지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이 현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부당한 야유와 손가락질을 멈추게 하려면 특별법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의 발걸음은 피해자와 함께, 피해자의 권리가 당연히 보장받는 사회로 향해야 한다.
"7명의 친구들에게 참사 이야기를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