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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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당일, 명신관 416호의 의자가 하나둘씩 채워지더니 어느덧 꽉 찼다. 유가족 패널들도, 청중들도 그 자리에서 무엇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서로를 눈에 담고 있었다. 첫 질문은 이태원 참사 이후 피해자들이 겪었던 일을 묻는 내용이었다. 하나뿐인 딸들을 하늘로 보내야 했던 두 유가족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강선이씨는 "이태원 참사가 명백한 국가의 실책이라는 것만큼은 모두가 공감할 줄 알았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 두려움에 떨지 않고 바깥에서 자연스럽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10월, 그 믿음은 무참히 깨어졌고 어떤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렸다. 최정주씨는 '놀러 가서 죽은 건데 그게 왜 국가 탓이냐'라는 2차 가해성 발언이 얼마나 유가족들을 괴롭혔는지 토로했다. 한 친구는 간담회가 끝나고도 놀러 가서 죽으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가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쏟아지는 폭력적인 상황을 방관하고, 오히려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정주씨는 경황이 없던 참사 직후에 빨리 지원금과 장례비를 받아가라며 울려대던 휴대폰을 떠올리며 "국가가 책임을 법리적인 것에 한정시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희생자들이 구체화되는 과정, 국민들이 희생자들과 일체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국가 애도 기간을 설정해 참사를 닫으려 시도했다"는 그의 설명과, "진상 규명이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정부가 정말로 진상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강선이씨의 말이 겹쳐 들렸다. 희생자를 애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별법 제정에 힘쓰는 대신 정치적 공방에만 집중해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정부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바삐 어딘가로 향하던 대구의 지하철 안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선박 안에서 그랬듯이, '놀러 가서 죽었는데 그게 왜 국가 탓'인 것이 아니라 '놀러 가서 죽었기에' 국가 탓이다. 최정주씨는 시청 앞 분향소로 이전해오기 전 녹사평역 부근에 설치되었던 시민분향소 옆에서 들려오는 신자유연대의 혐오 발언을 녹음한 영상을 보여주셨다. 너무 힘들어 다 지우는 바람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유가족들은 참사 200여 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국가의 부재로 온전히 애도하지 못하고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
'별가족'들의 또 다른 집, 시민분향소
강선이씨는 분향소가 유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 "분향소는 유가족들의 또 다른 집"이라 표현했다. 영정사진 뒤에 아이들이 사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함께였다. 강선이씨에게 분향소는 딸을 재회하는 장소이자, 별이 된 아이들이 맺어준 새로운 가족들인 '별가족', 즉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는 장소였다. 강선이씨는 별가족들과 함께 아이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위로받고, 희생자들이 잊히지 않도록 기억할 수 있는 분향소가 소중하다고 했다.
최정주씨는 참사 유가족과 주변인들이 '유가족'이라는 단어에 갇히게 되는 경험을 나눠주었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과도 예전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만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최정주씨에게 분향소는 눈치 보지 않고 웃을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안전을 원하거든 참사를 기억하라"

▲ 간담회 이후 찍은 단체사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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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초고를 작성하는 5월 30일은 세월호 참사로부터는 약 9년, 이태원 참사로부터는 215일이 지난 날이다. 국민들은 4월 16일에 국가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며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그러면서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8년이 지난 해의 10월 29일, 국가는 다시 있어야만 했던 순간에 부재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2014년 당시 대부분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듣는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고, 책임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답변을 듣고 싶었던 질문은 마지막에 나왔다. '참사를 보고 들은, 기억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강선이씨는 당신께서 이미 나이가 많기에 다음 세대가 이어서 진상 규명을 위해 힘써주었으면 좋겠어서 대학 간담회에 왔다고 답변했다. 또래가 기억해야만 참사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최정주씨는 모두 자신이 지닌 생각의 가지를 주변에 뻗을 수 있는 청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는 정부 여당과 언론이 참사에 씌워놓은 프레임을 타파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최정주씨는 마이크를 잡고,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므로 한 명에게라도 진실을 더 알려달라고, 분향소에 한 번이라도 더 와서 희생자들을 만나 달라고, 무엇보다 '놀러 가서 그렇게 된 거잖아'라는 말에 단호하게 틀렸다고 말해달라고.
간담회를 통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잘못된 말을 했을 때 논쟁을 피하지 않고 바로잡는 것, 그리고 오래 분노하고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한다면 분명히 연대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깨달음도 함께였다.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 촛불 문화제에서 울렸던 "안전을 원하거든 참사를 기억하라"는 구호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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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가서 그런 거잖아"란 말, 단호히 부정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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