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 혁신을 위한 독일 한인 예술가들의 목소리

한국 공연예술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제안과 도전

등록 2024.03.30 14:15수정 2024.03.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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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140개의 공공극장이 있다. 이들 극장은 한 지붕 아래 고용된 예술가들에 의해 음악극(오페라, 뮤지컬), 무용, 연극,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순수예술 장르가 자체 생산된다. 이러한 자체 제작 시스템 덕분에 극장은 연중 상시 수준 높은 작품을 제공하며, 역사적으로 유지되어 온 연방제의 영향으로 공공극장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또한, 극장은 단순히 문화예술 향유의 목적을 넘어 인프라, 음악교육, 일자리, 도시의 격을 높이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한편, 한국에는 약 250개가 넘는 문예회관/예술의 전당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대관 및 이벤트성 공연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전국 가동률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독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의 많은 예술가들은 공연을 위해서 대관료를 내거나 공모전을 통해 지원받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관 기반 시스템에서 벗어나 고용된 예술가를 통한 자체 제작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현재 독일에는 약 800명의 한국 예술가들이 다양한 극장에 고용되어 활동하고 있다. 작년 11월 이들 중 몇몇이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공공문예회관의 제작극장화 촉구를 위한 제안문'을 작성했다. 이들은 한국 공연예술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예술가들의 일자리 부족과 예술 발전을 저해하는 불공정한 운영 시스템도 포함하고 있다. 대안으로 독일식 제작극장 시스템 도입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유럽 전역의 한국 예술가와 유학생들이 이 운동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제안서는 2024년 3월 1일부터 한국의 정치, 언론, 예술계, 음대 등 문화 예술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되었다.
 
a 브레머하펜 시립극장  독일의 중소형 시립극장

브레머하펜 시립극장 독일의 중소형 시립극장 ⓒ H. Zell

 
그러나 좋은 시스템도 무턱대고 가져와 실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일 중소도시 극장의 경우 예술가 및 극장 관계자가 200명 이상 고용되어 있는 만큼 100억 이상의 예산이 든다. 통상적으로 독일 제작극장 예산의 약 75%가 인건비, 15%가 운영비, 10%가 제작비로 책정되는데 이에 대한 설득도 큰 과제이다.

문화 예산이 각 도시와 지자체 정치권의 결정에 달린 만큼 제작극장 시스템의 장점을 주장하기에 앞서 정확한 데이터와 통계 자료를 통한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 이는 문화 정책적 관점에서 극장이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가치를 지니며, 미래 세대에 끼칠 영향까지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독일식 제작 극장의 이양이 아닌 한국의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안도 제시되어야 한다. 

한국과 같은 공연예술기관을 독일에서는 'Gastspielhaus'라고 부른다. 초대(순회) 연주공연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예술가들의 순회 연주를 위한 공연장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극장에서 메우지 못하는 수요의 일부를 채우는 데 불과하다. 한국 문화예술기관은 예술가가 더 이상 손님으로 다녀가는 곳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더 나아가 예술가들의 적극적 참여와 시민들의 요구가 더해진다면 한국식 공공제작극장의 실현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해당 제안서는 2024년 3월 1일부터 한국의 정치, 언론, 예술계, 음대 등 관련 당국과 당사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며 현재에도 진행중입니다.
#제작극장화 #공공극장 #독일제작극장 #문예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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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다 독일에서 극장과 오케스트라 경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공연문화예술과 문화정책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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