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세 분의 스승을 기립니다

세상을 깨우쳐주신 '인생스승'을 존경합니다

등록 2024.05.15 15:36수정 2024.05.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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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군민회장이 2020년에 실향민 2세들에게 격려말씀을 하고 있다. ⓒ 이혁진

 
세분의 인생선배이자 스승
    
지난해 대학교 은사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입학 50주년을 맞아 축하하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뵙는 은사 대부분 망구(望九)의 나이다. 90세를 넘은 스승도 계셨다.
     
스승과의 대화는 훌쩍 과거를 거슬러 추억을 소환했지만 서로 공감하는 데는 애를 먹었다. 시간이 흐르면 추억과 기억도 희미해지기 때문이리라.
    
실제 내가 회상하는 학교생활과 은사님이 회고하는 내용은 많이 달랐다. 나는 생생한데 은사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이런 몇 번의 어색한 순간은 화제를 바꾸면서 위기를 넘겼다.
     
이처럼 학교에서 배운 스승도 있지만 내 경우 졸업 후 세상을 깨쳐주거나 인생의 나침반 같은 은사도 적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걸 사회와 인생선배께 특별히 사사한다고 할까.


내게는 세 분의 스승이 있다. 먼저 실향민사회의 미수복경기도 개풍군민회 김문수(87) 회장님이다.
     
회장님은 2018년 실향민 2세로 실향 이산가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전해 듣고 나를 군민회 사무국장으로 발탁했다. 개풍군민회는 이북 개풍군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전후 조직한 친목단체다.
     
서로 힐난하거나 반목하는 실향민사회에서 회장님은 서로 배려하고 경청하는 분위기로 화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가까이서 매일 지켜본 회장님은 매사 공사(公私)가 분명했다. 판공비를 사용하지 않고 사비를 털어 군민회를 지원했다. 재직하면서 실향민사회에 누를 끼치는 일이 전혀 없었다.
     
회고하면 실향민사회에서 김 회장님 같은 헌신적인 지도자가 흔치 않다. 실향민들에게 모든 걸 양보하면서 자신의 명예와 권위는 내려놓았다.
     
회장님은 겸양과 기다림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셨다. 인생후반에 무엇을 남길지 고민할 때 회장님은 내게 여생의 목표와 책임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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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잔치에서 김종수 선생님이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혁진

 
동네에도 스승이 한 분 계시다. 10년 전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영어회화를 가르치면서 인생의 의미까지 깨우쳐 주신 김종수(88) 선생님이다. 요즘 헬스장에서도 가끔 함께 운동하고 있다.
     
지난해 눈이 갑자기 이상이 생기면서 선생님은 오랫동안 하던 강의를 그만두었지만 이후 파지나 종이를 줍는 노인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인 회사에서 익힌 실전영어를 배웠지만 선생님의 인생모토를 더 흠모하고 있다. 선생은 배우지 못했거나 놓친 사람들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면서 늘 학생들을 받들어 대했다.
      
이때 사제지간으로 맺어진 20여 명은 지금도 인연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선생님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나는 용기와 희망을 얻고 있다.
     
두어 달 전 선생님의 미수(米壽)잔치가 있었다. 선생을 존경하는 많은 주민들이 축하했다. 우리 부부도 참석해 건강과 행운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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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인 아버지 ⓒ 이혁진

 
스승의 교훈, 가르치기보다 겸양을 강조
    
마지막으로 스승으로 여기는 분은 95세 아버지다. 일제치하의 탄압과 억압 속에 굶주려 살다 해방을 맞고 6.25 전쟁을 겪은 아버지는 혈혈단신 남하했다.
     
이처럼 분단과 전쟁 등 파란만장하고 치열한 삶을 사신 아버지 세대는 지금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아버지가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사부일체(師父一體)'라는 말에 공감한다. 아버지야말로 가장 가까이 가장 많이 시간을 함께 하는 스승 중의 스승이다.
     
세월이 갈수록 아버지 인생이 녹록지 않았음을 실감하고 있다. 나로선 아버지의 삶 궤적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기적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처한 고통과 불행에 대해 낙담하거나 실망한 적이 없다. 늙어가면서 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한편 스승을 여럿 두고 나는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는 야무진(?) 꿈을 키우고 있다. 스승이 되지 못해도 그런 노력들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가르치기보다 배운다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모신 스승 대부분 그런 지혜와 교훈을 실천하셨다. 
   
앞서 소개한 세 분의 스승은 모두 나보다 훨씬 연장자들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나이 어리거나 젊고 훌륭한 스승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오늘 스승의 날이다. 세분의 스승께 안부문자를 드렸다.

"스승의 날입니다. 인생을 함께 하면서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 가까이 계신 것이 행복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스승의날 #개풍군민회 #김문수회장 #김종수선생 #대학교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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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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