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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장기임대주택 육성... '리츠 활성화' 정부의 진짜 속셈은?

정부의 '장기민간임대주택 리츠'가 우려 되는 이유...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익주택' 필요

등록 2024.06.21 13:44수정 2024.06.2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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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지난 17일 정부는 국민소득 증진과 부동산 산업 선진화를 목표로 '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임대주택, 오피스, 물류 등 부동산 산업을 제도권의 영역 안에 품고 정비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장기 과제다. 그러한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방안이 말하지 않는 지점에 대해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장기민간임대주택 육성... 누구를 위한 부동산 시장 안정책인가?

리츠 활성화 방안은 각종 리츠 규제 완화와 신규 리츠 유형 도입, 리츠의 투자 대상 확대 등에 대해 제시한 후 부동산 시장 안정과 발전을 위해 민간임대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걸 밝히고 있다. 특히 리츠의 신규 사업 유형으로서 중산층 장기임대주택(이하 장기민간임대주택)을 육성하겠다고 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사업은 민간임대사업자가 주택을 장기간 임대할 수 있도록 규제를 최소화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기업형 장기민간임대주택일 걸로 보인다. 이 집에서 임대사업자는 20년이라는 긴 사업 기간을 부담하는 대신 기존의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에서 적용되던 최초 임대료 제한을 받지 않고, 임대료 인상률 제한도 완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된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 언급된 이후 국토부 장관 역시 언론에서 장기민간임대주택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시기가 불편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지난 2년여간 금리 인상, 건축 원가 인상 등으로 주택 매매 시장이 침체했고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대거 발생했다. 최근에는 주택시장이 회복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지만 서울과 수도권에 한정된 현상이라든지, 혹은 아직 지역엔 미분양이 많다든지 상반된 해석의 보도도 나오고 있어 여전히 시장 전망을 낙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시기에 굳이 장기민간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 목적보다는 건설업계의 자금 융통을 위한 걸로 보이기 쉽다. 

이번 리츠 활성화 방안에서 정부는 장기민간임대주택 육성을 제시하기에 앞서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리츠를 브릿지론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의 토지 인수에 활용하겠다는 계획과 미분양 주택을 매입, 운영하는 미분양 CR(기업구조조정)리츠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주택 매매 시장이 침체하며 하우스 푸어 문제가 제기되었던 박근혜 정부 시기에 처음으로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사업이 추진되었던 것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이다.


민간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 임대주택 꼭 그렇게 운영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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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17일 발표한 '리츠' 설명자료 ⓒ 국토교통부

 
지금까지 나온 정부 발표와 국토부 장관의 언론 인터뷰로부터 추정해 보면,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장기민간임대주택은 세입자가 오랫동안 한 집에 거주할 수 있도록 민간사업자에게 임대료 산정에서의 혜택, 세제 혜택, 주택도시기금 융자를 지원하는 사업모델로 이해된다.

현재 운용 중인 정책인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의 리츠에 주택도시기금의 출자가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장기민간임대주택 리츠에도 그와 같은 공공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민간사업자에게 그런 혜택을 다 주어야만 거주 안정성을 보장하는 임대주택이 가능할까?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중 '공익주택 공급 촉진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게 있다. 이 법안이 우리 사회에 도입하고자 했던 '공익주택'은 임대사업자가 주택도시기금의 지원, 공공의 토지 지원, 세제 혜택 등을 받아 20년 동안 임대사업을 하는 집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장기민간임대주택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공익주택은 장기민간임대주택과 달리 최초 임대료도 시세보다 낮게 설정하고 임대료 인상률도 일반적인 민간임대주택과 동일하게 제한받는 주택이었다. 공익주택을 공급하는 임대사업자는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비영리법인 등으로 주로 이윤 배당을 제한받고 있고, 때문에 공익주택에서는 민간사업자가 공공지원을 자신의 이윤을 위해 전용할 위험도 낮았다.  

장기민간임대주택과 달리 공익주택에서 민간사업자는 공공지원의 대가로 세입자에게 오랜 거주와 낮은 주거비 부담을 보장하고, 비영리 사업체 구조를 취함으로써 정부에게 공공지원의 공익적 사용을 약속한 것이다. 이처럼 공공지원과 임대주택 사업의 공공성이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가지는 것은 국외 임대주택 사업 모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에서는 사회주택을 정부나 공기업뿐만 아니라 영리 추구를 제한받는 비영리 민간사업자가 저렴한 임대료로 오랫동안 거주할 수 있도록 공급, 운영하는 것이다. 미국조차 임대주택 공급을 포함하는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로 CDC라는 비영리 회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 사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정부 말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의 한 시범사업으로 입주자가 사회적협동조합(마찬가지로 비영리사업자다!)을 설립하고 주택도시기금의 출자를 받아 리츠를 세워 임대주택을 공급, 운영하는 사례가 경기도에 2단지가 있다.

민간사업자의 임대주택 사업 참여를 위해 최초 임대료 제한을 없애고 임대료 인상률 제한도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장기민간임대주택과 달리, 해당 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에 법에서 정하고 있는 5% 임대료 인상률보다 낮은 인상률로 임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서유럽과 미국 사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일부 사례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저렴하고 거주가 안정적인 민간임대주택은 민간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뉴스테이의 부활에 대한 우려와 공익주택의 필요성

주택 매매 시장의 상황 때문일지라도 정책이 동력을 받을 수 있는 시기에 민간임대주택 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의 민간임대주택 사업은 적절한 행정 통제의 범위에서 관리되지 않는 탓에, 사인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공공이 개입해 개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임대사업자 제도의 정비는 이를 극복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동시에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세입자에게 필요한 집은 민간사업자에게만 이익이 많이 나는 집이 아니라 저렴하고 오래 거주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임대주택이라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장기민간임대주택을 보며 이러한 단순명쾌한 진리를 계속 달의 그림자에 가리려 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이번 리츠 활성화 방안을 보면 정부는 장기민간임대주택 리츠를 위한 향후 조치사항으로 '육성 방안 발표'를 제시했다. 현재 장기민간임대주택 유형 도입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 개정 사항이 아니라 법률 개정 사항이라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이 필요할 걸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 정의된 민간임대주택 사업 유형 일부를 이용해 법률 개정을 우회하는 육성 방안을 발표하고 장기민간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정부는 이미 장기민간임대주택 사업 추진 의사를 2차례 정도 밝혔고 국토부 장관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민간사업자에게 과도한 혜택만 제공하고 공공성을 담보하지 않는 것은 현행 법률상의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사업을 박근혜 정부 시기의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로 후퇴시키는 것이기도 해 우려가 크다.

이제 공은 국회에 넘어갔다. 국회는 정부가 법률 개정을 우회하며 입법권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민감하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 국회는 장기민간임대주택보다 더 공익적 민간임대주택을 제도화해야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국회가 유산으로 남긴 '공익주택'처럼 말이다.
 
#공익주택 #장기민간임대주택 #뉴스테이 #위스테이 #사회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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