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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인사는 4.3 비극 현재형, 방조하는 윤석열 대통령

등록 2024.07.26 13:44수정 2024.07.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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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일 태영호 전 의원(왼쪽)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지난 1일 태영호 전 의원(왼쪽)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은 4.3에 대해 관심이 없다. 말하자면 북한 교과서 어디에도 김일성이 4.3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없다. 왜냐하면 4.3은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북한은 수령님이 실패를 지시했다고 절대 교육하지 않는다. 실제 객관적인 모든 증거를 보면, 당시 4.3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은 남로당 중앙당이 아니고, 제주도당의 당원인 걸 알 수 있다."
 
제주4.3에 정통한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이자 역사학자인 주진오 상명대 명예교수의 확신이다. 주 명예교수는 서울에서는 이례적으로 비제주 출신 학자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11월 대학로에서 열린 <4.3 역사 콘서트> '4.3 왜곡 + 역사부정과의 전쟁'에 참석해 이같이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2월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국민의힘 전당대회 및 4.3 평화공원 참배 당시 "4·3 사건의 장본인은 북한 김씨 정권", "제주 4.3 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라고 주장해 제주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주 명예교수가 북한 교과서를 예로 들며 "가장 바람직한 대응은 팩트를 통한 대응"이라며 "이념적인 논쟁으로 몰고 가면 결코 바람직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북한 김일성 대학을 졸업한 탈북민 출신 주성하 기자 또한 지난해 2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태 전 의원의 주장에 대해 "지방에서 4·3 사건, 제주 사건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며 "북한은 굳이 4·3 사건을 정규 교육에서 가르치거나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김일성 우상화를 가르치지 굳이 무슨 항쟁이니, 제주 항쟁이니 이런 거 안 가르친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념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현상이 문제다. 그런 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태영호의 발언은 4.3.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폭행일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 대한 상식을 어떤 방식으로든 뒤집으려고 하는, 좀 더 넓은 범위 내에서의 어떤 작전 내지는 공작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언론이 일조한 그런 담론 공작에 태영호가 적격인 인물이었을 뿐이다."
 
주 명예교수와 나란히 <4.3 역사 콘서트>에 참석했던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의 견해다. 역사학자들이나 북한 출신 기자 모두 태 의원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콘서트가 열렸을 당시,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은 태 전 의원의 역사 왜곡 발언으로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유족들은 오는 8월로 예고된 제주지방법원의 1심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2일 태 전 의원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취임했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현 윤석열 정권의 의중과 메시지가 반영된 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 4.3 단체들이 즉각 반발에 나선 것은 당연지사다.
 
계속되는 4.3 왜곡과 부정
 
"윤석열 대통령은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이라는 최악의 인사에 대해 사과하고 그 인사를 철회해야 한다. 태 전 의원 역시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고 어울리지 않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줄 것을 촉구한다."
 
지난 24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이 같은 주장이 포함된 공동 논평에서 "특히 현재 4.3에 대한 허위사실 등으로 인해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단 한 번의 출석은커녕 사과 표시조차 없는 후안무치한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현 민주평통 자문회의 위원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6명의 제주도의회 의원들은 태 사무처장 임명에 반발하며 자문위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 역시 "민주에서 가장 멀고, 경험도 없으며, 평화에 대한 의심도 크고, 제주4.3 당시 천인공노할 서북청년단과 같은 적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태영호를 사무처장에 임명하느냐"며 민주평통 의장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렸다.
  
a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24일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태영호 전 의원을 임명한 데 대해 반발하며 자문위원 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24일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태영호 전 의원을 임명한 데 대해 반발하며 자문위원 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제주도의회 제공


지난해 4.3 발언 등으로 국민의힘 최고위원직에서 낙선한 태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를 전후해 4.3 발언에 대해 사과는커녕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4.3 단체들의 지적대로, 태 사무처장은 재판에 불출석한 채 일말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힘 내에선 태 사무처장과 같이 4.3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인사가 또다시 등장했다. 지난 8일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 광주·전북·전남·제주 지역 합동연설회에 청년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김정식 전 당 청년대변인이 그 주인공이다.
 
김 전 청년대변인은 4.3의 발단에 대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 간부 김달삼이 수백 명의 무장대원을 이끌고 경찰서를 기습했다"며 "그렇게 선량한 제주도민들을 살해한 것이 4.3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라고 했다.
 
또 그는 "민주당과 좌파가 슬픈 역사를 이용해 '독재자 이승만이 억울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했다'고 말한다"며 "당장 눈앞의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이념과 가치를 포기하고 정치적, 역사적 명분과 정당성을 포기해 가면서 미래를 팔아서 현재를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에 명시된 "미군정 시기인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라는 사건의 발단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4.3 학살의 책임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라 볼 수 있다. 태 사무처장에 이어 국민의힘 내에서 선거 기간 4.3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망언이 공식 석상에서 재등장했던 것이다.
 
4.3을 넘어선 역사 쿠데타
 
정부와 여당의 4.3에 대한 부정과 왜곡에 대한 메시지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논란에 섰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위원장 후보 5인 중 1명을 지난 2021년 법원의 4.3 직권 재심이 위헌·위법이라고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전 회장인 김태훈 변호사로 추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관련기사: 제주4.3 폄훼 인물 인권위원장 하마평... 시민사회 반발 https://omn.kr/29kij).
 
당선자 신분이던 2022년을 제외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4.3 희생자 추념식에 2년 동안 참석하지 않았다. 4.3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이나 철학을 드러낸 적도 없다. 하지만 인사가 만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되거나 인권위원장 후보 오른 인사들 모두 현 정권 들어 출몰한 역사 왜곡과 부정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4.3만 해도 4.3 75주년 희생자 추념식 당일, 4.3평화공원 부근엔 서북청년단을 자처하는 이들이 시위에 나섰다. 그에 앞서 제주 전역에 4.3의 의미를 부정하고 비하하는 현수막이 보수 단체 명의로 내걸렸다.
 
또 천안시는 4.3 학살의 책임자 중 하나인 조병옥 당시 경무부장의 홍보 표지판을 태조산 보훈공원에 설치하면서 4.3 단체 및 시민단체의 반발을 섰다. 이들 단체를 중심으로 3만 4.3 학살의 책임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반대의 목소리도 계속되는 중이다.
 
4.3을 넘어선 현 정부의 역사적 퇴행을 향한 비판도 드높다. 지난해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하려다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에 휩싸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2년 말, 윤석열 대통령이 시민·역사단체들의 반발 속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에 극우 인사인 김광동 위원장을 임명한 것 역시 끊임없는 반발과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쪽엔 극우, 한쪽엔 뉴라이트를 등에 업은 윤석열 정권의 역사적 퇴행을 두고 앞서 소개한 <4.3 역사 콘서트>에서 주 명예교수는 "일종의 역사 쿠데타요, 역사 쿠데타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한 역사의 왜곡과 퇴행은 국민들의 단단한 주체적인 역사의식에 의해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제주에서 벌어진, 아직도 사건을 넘어서는 정명(正名) 와중에 있는 제주4.3이 지속적으로 현 정부 들어 부정 당하고 왜곡되고 있다. 76주년을 맞은 4.3의 비극은 현재형이다. 제주도민들의 예상되는 반발을 무릅쓰고 태영호 사무처장을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이를 인지하고는 있을까.
#태영호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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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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