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 이후 중장기 목표 없는 한국의 기후대응?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기후헌법소원서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 '환경권' 침해

등록 2024.08.30 09:33수정 2024.08.3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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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헌법재판소는 29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사건(2020헌마389 등)’에 있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사건(2020헌마389 등)’에 있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 헌법재판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의 선고에 재판장 곳곳에서는 기쁨과 안도의 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방청객은 숨죽여 울먹였습니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의 일부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29일 나왔습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당분간 효력을 유지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①2020년 청소년기후소송 ②2021년 시민기후소송 ③2022년 아기기후소송 ④2023년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 헌재는 총 4건의 기후소송을 병합해 판결을 내렸습니다.

청구인들은 현재 한국의 낮은 감축목표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뿐더러,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감축 부담을 넘긴다는 취지로 기후소송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앞서 헌재는 올해 4월과 5월에 걸쳐 2차례 공개변론을 열었습니다.

헌재, 2031년 이후 장기 감축목표 부재 '헌법불합치'

한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이 2030년까지 감축목표만 정하고, 2049년까지 남은 기한의 감축목표에 대해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라고 짚었습니다.

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과 이듬해 나온 시행령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 이후 기간에는 감축목표를 별도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목표를 세우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으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헌재의 설명입니다.

헌재는 이에 대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말했습니다.

a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발표 당시 정부는 2030년까지만 감축목표를 설정했다. 2031년 이후부터는 5년 주기로 설정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발표 당시 정부는 2030년까지만 감축목표를 설정했다. 2031년 이후부터는 5년 주기로 설정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 그리니엄


2030 감축목표 의견 엇갈려… 정족수 미달로 '합헌'

그러나 현행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가 국제사회에 합의된 기준에 미치지 못해 국민 기본권 등을 침해한다는 청구인 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목표, 즉 2030 NDC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전제로 한 '중간목표'라는 것이 헌재의 말입니다.
헌재는 "이 수치(40% 감축목표)만을 이유로 미래에 부담을 주거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부가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을 통해 설정한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이 나왔습니다. 한국은 2024년 6억 2510만 톤에서 2030년까지 4억 3660만 톤을 감축해야 합니다.

청구인 측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가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뿐더러, 실질적인 효과가 담보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선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재판관 4명(이종석·이은애·이영진·김형두)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권한과 책임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며 "중장기 목표를 달성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재판관 5명(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은 "미래에 과중한 부담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하여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위헌 의견 정족수인 재판관 6명에 미달해 합헌으로 판단됐습니다.

a  29일 오후 헌법재판소의 판결 직후 기후헌법소원 청구인과 공동대리인단이 서울 종로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아기기후소송단 청구인인 한제아 양이 발언하는 모습.

29일 오후 헌법재판소의 판결 직후 기후헌법소원 청구인과 공동대리인단이 서울 종로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아기기후소송단 청구인인 한제아 양이 발언하는 모습. ⓒ 그리니엄


기후헌법소원 청구인, 헌재 결정 환영

기후헌법소원 청구인과 공동대리인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결정을 반겼습니다. 4년 5개월여만의 헌재의 결정에 기자회견장을 찾은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2020년부터 청소년기후소송을 대리해 온 윤세종 변호사는 "헌재의 헌법불합지 결정은 법에 따라 모든 국가기관에 기속력을 가진다"며 "이는 법이 정한 국회와 정부의 의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미래세대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고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하였다는 것이 핵심적인 위헌 사유이므로 헌재가 제시한 기한 내에 이 위헌성을 해소하는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윤 변호사는 밝혔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김서경 활동가는 "이번 기후헌법소원으로 기후대응 기준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변화가 만들어질지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아기기후소송 측 청구인인 한제아 양은 "헌법소원은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담겨있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며 "오늘의 결과가 마치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쁘고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청구인 측은 공동 성명을 통해 "(헌재에서) 인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면서도 "기후위기를 넘어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a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제기된 기후헌법소원의 판결이 29일 나왔다. 판결 직후 기후헌법소원 청구인과 공동대리인단이 서울 종로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제기된 기후헌법소원의 판결이 29일 나왔다. 판결 직후 기후헌법소원 청구인과 공동대리인단이 서울 종로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기후미디어허브


정부·국회, 2026년 2월까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해야

헌재가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헌재는 "(해당 조항이)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하고 환경권을 침해했다"면서도 "이 조항이 (법적) 위력을 상실할 경우 2050년까지의 정량적 중간목표가 사라져 오히려 제도적 장치가 후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정부와 국회에게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시한도 내놨습니다. 2026년 2월 28일까지입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때까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한편, 정부와 국회 역시 이번 헌재의 결정에 반응을 보였습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환경부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짧게 밝혔습니다. 2050 대통령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김상협 민간위원장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헌재의 이번 결정을 엄숙히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헌재를 찾은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의왕·과천)은 기자들 질의에 "국회와 정치의 책임이 훨씬 더 커졌다"며 "정부가 이번 헌법불합치 내용을 빠르게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른 시일 안에 내용을 검토한 후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의정부갑)은 SNS를 통해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을 인정하고 헌법상 국가의 보호의무를 인정한 최초의 결정"이라고 환영했습니다.

헌재 결정, 2035 감축목표 논의서 바로미터 될 것

두 의원이 공통적으로 짚은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2035년 감축목표(2035 NDC)입니다.

현재 정부는 올해 초안을 목표로 2035년 감축목표를 수립 중입니다. 파리협정 내 '진전의 원칙'에 따라 감축목표는 5년 주기로 매번 상향해야 합니다.

박 의원은 "현 2030 감축목표에 대해 5명이 나 되는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며 "현재 논의되는 2035 감축목표 결정 시에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꼭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헌재의 판결이 2035 감축목표 설정에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의원도 2035 감축목표와 그 이후 중장기 감축목표 설정 시 더 과감하고 과감한 기후입법안이 필요한 것이 분명해졌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번 기후소송이 사실 정치가 더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제기된 소송"이라며 "결론적으로 국회가 더 열심히 사회적합의를 도출해 (감축목표를) 정했어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2035 감축목표 설정에 있어 국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
#기후위기 #기후헌법소원 #기후소송 #아시아 #기후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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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기후위기라고 생각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술과 토론이 답이라고 생각. 사실과 이야기 그리고 문제의 간극을 좁히고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중. ■ 이메일 주소: yoon365@greenpuls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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