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푹빠져 시청하는 아이의 모습"학부모님께서 아이를 잘 키우려면 뭘 더 시키면 될까요?라고 물어보시는데 나는 오히려 빼기를 추천드린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 빠져있으니 반대로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치워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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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 머무르면서 교육과 돌봄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안전, 식욕 등 사람의 1차적 욕구는 돌봄의 영역에서 다루어진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돈도 필요하지만 시간과 인내심, 에너지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체력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한 보호자가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면 가정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생활을 잘한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의외로 양질의 돌봄은 귀하다.
나는 학부모님과 상담할 때면 좋은 가정의 장점을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다. 학생 지도에 도움이 될까 하여 나름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나중에 취합한 메모를 쭉 정리하다 보면 의외로 소박한 모습에 놀랄 때가 잦다.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습관. 대체로 집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가정은 쓸고 닦고, 설거지하며 공간을 말끔하게 유지하는 습관이 자리 잡혀 있었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아이는 병치레를 덜 했다. 도서관을 일주일 단위로 방문하며 대출 기간을 지키는 습관 역시 부지런함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독서와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부모님이 함께 실천하기는 어렵다. 도서관은 독서 습관을 기르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다. 아이와 책을 고르고,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식사를 규칙적으로 먹는 일상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밥상머리에서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은 소중한 가정 의식에 가깝다. 제철 음식은 영양소가 풍부하고 맛과 향이 진하다. 가족이 함께 장을 보고 밥을 먹는 일련의 행위는 그 자체로 따뜻한 공동체의 기본 조건이 된다.
문제는 가사에 충실하며 돌봄에 전념하는 생활을 하는 데도 비용이 드는 것이다. 외벌이 가정이 일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맞벌이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가구 중 46.1%가 맞벌이였다. 특히 40대(55.2%)와 50대(55.2%)에서 비율이 높았다.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시기에 맞벌이가 몰려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외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자녀 돌봄과 가사에 집중할 여지가 생긴다. 반면 금전적으로 수입이 줄어든다. 원래부터 넉넉한 집안이라 돈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돌봄과 경제 수입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불필요한 것 덜어내고 자극으로부터 멀어져야
부부 교사인 우리 가정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치원 때보다 하교가 빨라졌다. 유치원에서는 오후 4시 이후 아이를 데려오면 되기에, 복무를 조절하면 맞벌이여도 큰 지장은 없었다. 반면 초등학교 1학년은 1시 20분이면 끝났다. 양가 부모님이 다른 지역에 있고, 직업이 있으셔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학원 뺑뺑이를 돌리자니 불안해서 썩 내키지 않았다.
육아휴직이 가장 좋은 대안이기는 하지만 당장 여기저기 돈 나갈 구멍이 보였다. 십 년을 타다 보니 저단 기어에서 덜덜 거리는 차가 있었고, 휴대폰은 오 년을 채워가고 있었으며, 큰 아이가 입학할 무렵에는 아파트 대출 잔금도 남아 있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우리는 최종적으로 시간을 선택했다. 수입이 줄어든 만큼 외식 대신 집밥 비중을 늘리고, 학원 보낼 돈을 아껴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풀었다. 돈은 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지만, 아이들의 유년기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다.
육아휴직의 효과가 어떠했는지 수치로 표현할 길은 없다. 다만 우리가 느끼기에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 아이가 즐겁게 등교하였으며, 집안 일도 쌓이거나 방치되는 날 없이 처리되었다. 건강한 간식을 만들어줄 짬도 생겼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일 년 늦게 사줄 수 있었고, 넉넉한 시간을 이용해 나들이를 가거나 문화생활을 즐긴 기억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라 하지만, 돈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시간의 가치 또한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