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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이 쓴 '묘갈명' (2)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 34]

등록 2024.09.09 14:24수정 2024.09.0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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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명 조식 선생 묘

남명 조식 선생 묘 ⓒ 김종신

공은 지혜가 밝고 식견이 높아 진퇴의 기미를 잘 살폈으니 일찍이 스스로 보건대 세도(世道)가 상실되어 인심이 이미 그릇되고 풍속이 각박해져 성현의 가르침이 침체 되었으며 또 현인의 벼슬길이 기구하여 재앙의 기미가 은밀히 드러나니, 이 때를 당해서는 비록 교화를 만회시킴에 뜻을 둔다 해도 도(道)가 때를 만나지 못하여 결국 내가 배운 바를 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까닭으로 과시에도 나가지 않고 벼슬도 구하지 않았으며 뜻을 거두어 산야에 은둔하였으니 남명(南冥)이라 스스로 호를 짓고 그 정자를 산해(山海)라 일컬었으며 사(舍)를 뇌룡(雷龍)이라 하였다.

최후에는 두류산 수굴운동(水窟雲洞)으로 들어가 8∼9개의 서까래를 얽어매고 산천재라 편액하였으니 몸을 깊이 감추어 스스로 닦은 지 수 년이 되었다.

중종조에 천거되어 헌릉참봉을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명종조에 또 유일(遺逸: 산림의 어진 선비)로서 재차 전생서(典牲署)·종부시(宗簿寺) 주부(主簿)를 제수하고 이어 단성현감으로 옮겼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인하여 글을 올려 이르기를 "국사가 날로 그릇되고 민심이 이미 떠났으니 그 반전의 기틀은 구구한 정치와 형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하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뒤 사지(司紙)를 제수하였으나 병으로 사양하였으며 또 상서원판관(尙瑞院判官)으로 불러 들여 사정전(思政殿)에서 인견할 때에 주상(主上)이 치도(治道)를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고금(古今)의 치란(治亂)은 책 속에 실려 있으니 신의 말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컨대 임금과 신하 사이에 정과 의리(情義)가 서로 부합하여 환연히 틈이 없어야 더불어 다스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옛날 제왕들은 신하 대접하기를 벗과 같이 하여 더불어 정치의 법도를 밝혔으니 신하의 말을 듣고 칭찬하며 감탄한 성대함이 있게 된 까닭입니다. 바야흐로 이제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 서로 흩어짐이 마치 어지러이 흐르는 물과 같으니 마땅히 서둘러 구하기를 불난 집에 불을 끄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또 학문하는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임금의 학문은 다스림을 내는 근원이고 학문은 마음으로 체득함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체득하면 천하의 이치를 궁구할 수 있고 사물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 만 가지 기미를 모두 잡아 스스로 무사할 것이니 그 노력은 단지 경(敬)에 있을 뿐입니다." 라고 하였으며, 또 삼고초려의 일을 묻자 대답하기를 "반드시 인물을 얻어야 한나라 왕실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세 번이나 찾아간 것입니다.""하니 주상이 칭찬하였다.

융경원년에 선조(宣祖)가 자리를 이어 받아 교지를 내려 불렀으나 사양하였고, 이어 부르는 왕명이 있었지만 또 사양하면서 소를 올려 "청컨대 구급(救急)이란 두 글자를 받쳐 몸 바침에 대신합니다."하고 당시의 폐단 열 가지를 진언했다. 선조 2년에 부름을 입었으나 사양하고 또 봉사(封事)를 올려 말하기를 "도(道)는 임금이 선을 밝히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는데 있으니 명선성신은 반드시 경(敬)으로써 주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하고 인하여 서리(胥吏)의 폐단을 극언하였다.


한참 후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을 제수하였으나 또 사양하였으며, 신미(辛未, 1571)에 큰 흉년이 들어 임금이 곡식을 내리자 글로써 감사를 드리고, 인하여 말하기를 "여러 번 상소를 올려 말씀을 드렸으나 말이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하였으니 말이 매우 간절하고 곧았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식평전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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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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