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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 죽인다고? '친환경 방제'의 무서운 실체

[지구를 위한 플랜 A] 서울시의회의 '곤충 데스노트 조례안'을 반대하며

등록 2024.09.05 18:24수정 2024.09.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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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기자말]
a  러브버그가 지난 6월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러브버그가 지난 6월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 이정민


날아다니는 검은 쌀알 같은 것들이 계단과 현관을 뒤덮었던 날이 있었다. 인간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덥고, 비가 많이 왔던 2022년의 여름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서울 은평구에 살고 있고, 은평구는 그 검은 쌀알 같은 존재들이 가장 먼저 주택가로 미끄러졌던 곳이다. 그 검은 쌀알들은 논란이 된 지 햇수로 3년 만에 정치권의 안건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 쌍이 같이 비행하는,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생물인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주인공이다.

그 해의 기묘한 현상으로 끝날 줄 알았던 러브버그의 방문은 매년 이어졌다. 벌레를 제법 무서워하는 축에 속하는 나도 여름철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러브버그를 유심히 관찰했다가 바깥으로 내보내 줄 만큼의 담력이 쌓였다. 관련된 글과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서로를 배워가는 과정이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것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나는 여름마다 러브버그를 동거충(蟲)으로 맞이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의 동거충에 대해 배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브버그를 포함한 생경한 벌레의 대발생 원인으로 기후 위기를 꼽았다. 기온이 상승하며 아열대 지방에 사는 러브버그가 한국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과도한 살충제 사용으로 생태계의 사이클이 훼손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살충제가 오히려 러브버그의 천적을 죽여 러브버그 개체수 증가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러브버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러브버그는 사람을 물지도 않고, 감염병의 매개도 아니라는 사실도 배웠다. 러브버그는 성충은 꽃의 수분을 돕고, 유충은 낙엽을 먹어 분해하는 일을 한다. 때문에 러브버그는 해충이 아닌 익충으로 분류된다. 이 사실은 러브버그를 박멸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된 근거가 된다.

나는 러브버그가 징그럽기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나, 러브버그가 익충이기에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 모두에게 공감하기 어렵다. 익충과 해충 구분은 인간의 관점에서만 유효한 일이고, 전체 생태계의 관점을 반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러브버그와 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 주인공은 인간이지 러브버그가 아니다. 러브버그가 생태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해충'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후의 생태계가 어떤 무시무시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고작 일주일간 성충의 형태로 생존하여 비행할 수 있는 러브버그는 매년 온몸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생물이 되었다. 징그럽다는 이유로 러브버그가 천덕꾸러기가 된 모습을 볼 때면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라 러브버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러브버그의 추방을 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동거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저 '해충'을 몰아내자


a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 연합뉴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러브버그가 인간의 관점에서 '창궐'한 지 3년이 되던 2024년, 한 무리의 인간들은 한 가지의 결심을 했다. 그것은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인간의 공간에서 러브버그라는 불청객을 추방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서울시의회는 8월 말,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 입법을 예고했다. 그리고 오는 6일, 이 조례안은 상임위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제 '러브버그는 익충'이라는 반쪽짜리 논리마저도 인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다.

해당 조례안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 중 하나는 '친환경' 방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여러 논란을 의식한 듯한 표현이지만, '친환경' 방제를 우선시한다는 조건만으로 논란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기존에 이루어지던 화학적 방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징그럽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다른 생물을 죽여버려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정 곤충만을 죽이는 '친환경' 방제는 존재할 수 없다. 조례에서 언급하는 '친환경' 방제의 정체는 나무에 끈끈이 테이프를 두르는 등 물리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방역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끈끈이 테이프로 인해 러브버그뿐만이 아니라 작은 새들과 다른 곤충들도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해당 조례가 시행된다면 생태계의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익충이라 불렸던 러브버그는 인간이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인간에게 '불편'을 끼치는 해로운 생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인간이 여전히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인간의 이익과 손해로만 규정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탓이다. 이익과 손해의 프레임 어디에도 자연의 입장은 없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당연한 사실도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문제이다. 인간은 인간의 삶을 위해 자연을 개발하고 화석연료를 태우며, 러브버그를 죽이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했으며,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의 문명, 경제가 자연이라는 야만을 개발하여 편익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오랜 시간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성적표를 받아보게 되었다. 이때까지의 믿음과 다르게 수많은 지표들은 인간이 기후위기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러브버그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문명의 시야에서 내려와 벌레의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 징그럽고, 불쾌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그래서 쉽게 치워버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벌레의 관점을 채택할 때만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쓸모가 아니라 이제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의 생활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인간은 만류의 영장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세계의 중심과 주변이 있을 것이라 보는 믿음, 정상과 비정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쓸모 있는 존재와 쓸모없는 존재가 구분되어 있다는 믿음이 인간 사회에서도 진실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전자의 것들은 후자의 것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마음껏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고 사용해 왔던 역사와 마찬가지다.

자연을 인간의 편의에 따라 구획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쓸모에 따라 인간을 구획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약하고 비정상적이고, 주변에 놓인 사람이 나와는 상관 없다고 믿을 수록 전체 사회의 복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늙고,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잃게 된다. 사회에서 좀 더 쓸모 있는 직업으로 여겨지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사회에서 평가절하된 대표적인 노동인 돌봄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에 세금이 사용되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지만, 늙고 병들고 운이 나쁘면 누구라도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 파괴가 말미암은 기후재난과 전염병의 창궐은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약한 존재의 복지를 위한 길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시대, 인간의 활동으로 파괴된 행성과 인간 자체를 돌보는 일에 우리가 더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회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투자하고, 행복을 증진하는 경제를 만들어 나가는 일, '만물의 영장' 인간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연을 파괴하는 끊임없는 팽창을 포기하는 일,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등이 지속가능한 방식의 인식론을 구성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러브버그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오는 6일 서울시의회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덧붙이는 글 그린피스는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러브버그 #생물다양성 #서울시의회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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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 에너지 캠페이너 신민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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