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만난 희망,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길

서울 서북부 봉산, 장애와 비장애를 너머 '모두의 숲길'로 거듭날 수 있기를

등록 2024.09.05 09:36수정 2024.09.0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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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 편백나무숲.
봉산 편백나무숲.은평시민신문

자연을 보호하는 일과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는 일 사이의 균형점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어찌보면 '보호와 이용'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균형점을 잃는 순간 두 마리 토끼는 커녕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균형점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내려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필수적인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봉산은 최근 '보호와 이용' 이라는 균형점을 찾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숲을 보존하면서도 또 어떻게 관리하고 이용할 것인지를 두고 주민들 간의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봉산 편백나무 숲은 치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방문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논란 속에서 봉산을 이용하는 두 명의 시민을 만났다. 그 중 한 명은 췌장암 4기에서 항암 치료와 편백숲을 통한 면역력 향상을 통해 암을 극복해가고 있는 양명희씨와 봉산 무장애숲길을 통해 케이블카 대신 휠체어로 처음 산을 올라본 장애인 이원정 씨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멀쩡한 나무를 왜 베어내나 싶었어요"

 10년 넘게 편백마을에 거주하며 췌장암을 극복해오고 있는 양명희 씨. (사진: 정민구 기자)
10년 넘게 편백마을에 거주하며 췌장암을 극복해오고 있는 양명희 씨. (사진: 정민구 기자)은평시민신문

10년 넘게 편백마을에 거주한 양명희 씨는 지난해 5월, 직장 건강검진에서 처음으로 암 진단을 받았다. 췌장암 4기였다. 발견 당시 종양의 크기는 2.5cm에 달했다. 진단을 받은 직후 양씨는 췌장암 4기의 심각성을 잘 몰랐고, 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저 다시 일할 수 있나요?"라고 의사에게 반복해서 물었다고 한다. 의사는 항암 치료를 권유했고, 씨는 6월부터 바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항암 치료를 견디는 일은 쉽지 않았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아 기초 체력이 부족했던 양씨는 항암 치료로 인해 백혈구 수치가 2천 대로 떨어지며 면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양씨가 힘들어하자 담당 의사는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암 환자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트에서 가장 큰 후회 중 하나가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양씨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양명희씨는 "편백마을에 살면서 편백나무를 처음 심기 시작한 김수일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 씨는 2010년에 아내가 담낭암에 걸린 후, 암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편백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도 아내분께서는 암을 극복하셨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매일 집 근처에 있는 편백숲을 오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맨발로 편백나무숲을 오르는 양명희 씨의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맨발로 편백나무숲을 오르는 양명희 씨의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은평시민신문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날도 폭염 속에서 양명희 씨는 맨발로 편백나무 숲을 올랐다. 그는 데크길 대신 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코스로 기자를 안내하며 봉산을 함께 올랐다. 양명희씨는 매일 두 시간씩 하루 두 번 봉산을 오르고 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양명희씨는 백혈구 수치가 성인의 평균 수치인 5천 대로 회복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항암 치료를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길러 30차례가 넘는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상태는 상당히 긍정적이며, 암의 크기는 처음 발견했을 때의 절반인 1.3cm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최근 봉산의 나무 벌목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 보도에 대해 양명희씨는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주민들이 화합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양씨는 "저도 사실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멀쩡한 나무를 왜 베어내나 싶었어요. 그런데 아파보니 알겠더라고요. 집 주변에 있는 편백숲이 저에게는 암에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죠. 부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다투지 말고 주민들끼리 잘 화합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처음으로 만난 숲길, 은평구 장애인들을 위한 새로운 선택지"

 휠체어를 이용해 봉산 무장애숲길을 오르는 이원정 씨. (사진: 구산보건지소 제공)
휠체어를 이용해 봉산 무장애숲길을 오르는 이원정 씨. (사진: 구산보건지소 제공)은평시민신문

이원정씨는 태어날 때부터 휠체어를 사용했다. 휠체어를 이용해 어딘가를 가는 것은 늘 시선을 받아 불편했고, 이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가족여행으로 산을 갔던 경험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설악산, 두 번째는 남산이었다. 두 번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지만,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설악산과 남산을 다녀온 경험이 좋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에는 은평구보건소 구산지소에서 봉산 무장애숲길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동안 실내에서만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받다가, 처음으로 실외에서 지소를 함께 이용하던 친구들과 보건지소 직원들과 함께 어딘가를 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이원정씨는 "예전에 갔던 산들은 모두 케이블카를 이용해 올랐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휠체어를 이용해 산을 올라봤어요. 한 번은 숭실고 방면으로, 다른 한 번은 수국사 쪽으로 올라갔죠. 수국사 쪽으로 올라갈 땐 잠시 절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저는 TV를 통해서만 절을 봤지,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절에서 피우는 향도 처음 맡아봤는데 신기한 경험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원정씨에게 봉산 무장애숲길을 이용해 산과 숲을 경험한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휠체어 장애인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다. 이원정씨는 "저처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지역을 떠나 멀리 어딘가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먼 곳에 가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부담을 감당하기가 어렵죠. 그리고 은평구 안에서 장애인이 갈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요. 당장 큰 길의 인도만 해도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 많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은평구 보건소 구산보건지소에서 장애인과 보호자가 함께하는 무장애 숲길 함께 걷기 워크숍. (사진: 구산보건지소 제공)
은평구 보건소 구산보건지소에서 장애인과 보호자가 함께하는 무장애 숲길 함께 걷기 워크숍. (사진: 구산보건지소 제공)은평시민신문

이런 점에서 무장애숲길이 생긴 것은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이원정씨는 "사실 혼자서 산책 한번 하겠다고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려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생기고, 기회가 생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해요. 보건지소에서 함께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자주 참여하고 싶을 것 같아요. 혼자가는 것은 무섭고 두렵지만, 친구와 동료와 함께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원정씨의 말처럼 갈 수 있어도 가지 않는 것과,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못 가는 것의 차이는 크다. 비장애인에게는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일이 일상이지만, 장애인들에게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못 가는 것은 일상이자 현실이다. 무장애숲길은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라도 늘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을 이용하고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산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논란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봉산 무장애숲길과 같은 사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산의 혜택을 제공하면서도, 생태계를 보존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두의 숲길'이 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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