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철거작업, 거실을 터 주방을 확대하는 공간구성을 했다.
이혁진
업자에게 내 친구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나는 업자에게, 내 친구가 하는 조언은 참고만 하면 될 뿐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형식적인 멘트에 불과했다.
사실 현역에서 뛰는 이 친구가 하는 말은 틀린 것이 1도 없었다. 업자는 친구의 설득력 있는 여러 지적에, 어떨 때는 아무말 않고 수긍했지만 어느 날에는 자존심이 상한 듯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돌아보면 정말 귀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친구는 막막한 안갯 속에서 햇볕처럼 빛이 나는 존재였다. 업자는 나중엔 노골적으로 친구의 방문을 꺼렸지만, 나는 친구와 업자 중간에서 표정관리하기 바빴다.
친구는 공사책임자와 대화를 하던 중에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사장님, 이 친구가 공사를 전혀 모르는 서생인데요. 그나마 친구인 내가 현장을 좀 알고 있으니, 친구를 대신해서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서생은 나를 말한다. 그러자그 말은 들은 업자는, 진심을 다하려는 친구가 부러운 듯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리모델링 현장에서 집주인이 전문가 못지않게 정통하면, 업자들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수리 비용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못한다. 사람들이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리모델링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새 집 고친 것도 좋지만... 둘도 없는 친구를 알게 돼 더욱 기쁘다
친구는 공사현장을 지키는 내가 미덥지 못하고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사실 나로서는 집 수리가 처음이니, 모든 게 어렵고 자신이 없었기도 했다.
어느 날은 비가 종일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데 친구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내가 당황스러워 연유를 물으니, 친구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올 때 누수 문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간 우리 집을 오가면서 공사 현장의 설계도를 직접 그리고 각종 인테리어 배치와 구조, 제원 등을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정성과 치밀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친구는 내 고교동창이다. 학창 시절엔 농구선수였다. 그랬던 그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농구를 그만두고 인테리어와 건축업계에 뛰어든 것은 직장생활까지 포함하면 30년이 넘는다. 운동했던 센스에다 남못지 않은 열정은, 70이 다 된 나이에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더라도 남을 돕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인생을 살면서 친구를 도운 적이 있긴 했어도 지금 이렇게까지, 내 일처럼 소매를 걷고 도와준 기억은 별로 없었다.
내가 친구 입장이라면, 친구처럼 업자에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결코 돕지 못할 것이다. 부끄럽다. 아니, 솔직히 그럴만한 용기와 자신감이 내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