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땀 흘리는 한 낮'(이철수 판화)
이철수
목판에 새긴 점과 획의 미학. 획으로 이어가지 않고 시작이자 끝인 묵언의 점으로 남긴 건 멈춰서서 응시하겠다는 뜻이다. 날카로운 칼날로 시작한 점이 여러 갈래로 뻗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한 획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건 깊은 사색의 길에 동행하자는 뜻이다. 시집의 책장처럼 여백이 충분한 건 타자의 상상력을 위한 공간을 남겨둔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나희덕 시인은 이런 이 화백의 작품에 대해 "간결하고 단아한 이미지와 화두처럼 꽂히는 문장이 조화를 이뤘다"면서 "그림으로 시를 쓴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화백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내어준 작품은 병풍 세트를 포함해서 총 58점. 병풍에 들어있는 작품을 한 개씩 셈하면 총 200여 점에 달한다. 이 화백은 "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라서 많은 분이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따뜻한 그림들을 가려서 뽑았기에 비교적 긴 시간대를 거쳐 만들어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새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은 '전태일의 불꽃을 들여올려'라는 제목의 두 점이다. 비천상처럼 보이는 단순화 된 사람의 이미지에 불꽃 덩어리를 들어 올려서 바치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에 각각 2개의 글을 달아 올린 작품이다.
이 화백은 "기도를 하고 있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 사람의 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전태일의 불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라면서 "우리 시대가 전태일의 불꽃을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존재로 인식하지 말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따뜻하고 정 많은 불꽃 존재로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전태일 의료센터를 만드는 일에 조금씩이라도 마음과 물질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