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나는 첫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대신 내가 연락을 받고 달려간 곳은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던 청소년복지회관이었다. 그 곳은 가출 청소년들을 상담하거나 보호하는 곳으로서, 집을 나갈 정도로 정신이 나간 아이들이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염치불구하고 찾아가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의 청소년 상담사라는 사람의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달려갔다. 청소년 상담사로부터 녀석의 이름 석 자를 듣고 나는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만사 제쳐두고 복지회관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어쩌면 이번 일로 해서 녀석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곳에는 막 출산을 끝낸 여자아이가 기진맥진한 몸으로 침상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청소년 상담사의 말로는 그 여자아이는 이미 하문이 열린 채로 뛰어 들어와 병원으로 옮길 사이도 없이 회관 복도에서 출산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간파했다. 여자아이는 녀석의 아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나는 방금 막 물에서 건져낸 듯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묘한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여자아이는 녀석과 같은 나이로 열일곱 살이었으며, 십개월 전 무슨 일인가로 녀석의 아이를 배었다. 나는 녀석이 그 여자아이에게 어떤 방법과 수단을 사용했는 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번 사건으로 녀석을 두 번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학교는 그 사건의 전말이 학교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방비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빠른 시일내에 그 사건을 마무리지음으로써 그 사건 이외의 또 다른 사건들이 표면으로 불거져 나오는 것을 경계했다. 학교는 이 일이 공연히 사회문제화하여 학교 이름에 똥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학교는 이 사건이 조용히 사그러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그냥 조용히 덮어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게 이 사건은 너무나 중대했다. 나는 이 사건을 남모르게 덮어두고 교사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비행이 밝혀졌는데도 녀석이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곧 학교안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음을 의미했다.
나는 학교를 설득하는 데 전력했다. 나는 녀석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려고 애썼다. 녀석은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있었다. 녀석의 용돈은 모두 그 아이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학교 안에서 녀석은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녀석은 굳이 주먹을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녀석의 말 한 마디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걸 희생했다. 최근 들어 녀석은 학교 안에서 휘두르는 폭력만으로도 부족해, 학교 밖을 배회하며 타 학교 학생들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단지 그 폭탄의 뇌관 일부를 보았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쯤에서 녀석을 그 모든 비행과 함께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저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았을 터인데도, 동료 교사들은 이제서야 비로소 녀석이 어떤 놈이었는지를 겨우 알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말에 격앙했다.
학교는 드디어 녀석에게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학교가 온전할 턱이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녀석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학교는 망설이지 않았다. 교사들의 의견은 한결같아서 굳이 다른 의견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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