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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7일 여의도에서 열린 '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 에서는 한 여의사가 삭발식에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백발의 시도지부 의사회장들과 함께 머리카락을 잘랐던 사람은 제주시 의사회 소속의 윤민경씨(33세).
의약분업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어지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의사단체나 시민단체, 정부의 주장에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지극히 평범하기만 했던 한 여의사의 삭발이야기는 우리 의료계가 앓고 있는 몸살이 결코 적당한 처방으로 나을 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강한 의료제도 속에서 의사나 환자 모두가 서로를 믿고,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주간 '청년의사' 에 실린 윤씨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변했더라”
한번쯤 내게도 그런일이 생기길 바랬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 정말로 세상이 변했다.
거울속의 내 모습이 달라졌다. 많은 남자들이 나때문에 울었단다.
삭발이라..
내겐 그리 큰 의미가 아니다. 의쟁투(의권쟁취투쟁위원회-편집자 주) 일을 자진해서 맡으면서 삭발식을 하면 나도 동참하겠노라고 했다. 긴머리의 여의사면 쇼킹하지 않을까. 그런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지난 16일 집행진과 통화했다. 한사코 말리셨다. 그래도 의논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17일 아침. 집을 나서면서 결심을 하고 모자를 썼다. 지켜보던 어머니께서 예감이라도 하신 듯 하신 말씀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 야야.. 니는 모자가 참 어울린다. 긴머리가 참 여자다워보인다”
단상에 올라가기 전 안타까운 눈빛으로 애써 시선을 피하려던 선생님들, 그냥 하늘만 쳐다보던 선생님들. 웃으면서 달래야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요. 그렇지만 우린 여기서 무너지면 안돼요. 전 삭발이 두려운 게 아니라 군중 앞에 나서는게 떨리는 그냥 평범한 두아이의 엄마고 의사예요. 이쁜 모자나 사주세요.”
김재정 위원장님이 단상 아래서부터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의지로 가득찬 동지애가 전해지는 듯 했다. 의자에 앉으니 바람이 참으로 슬프게 느껴졌다. 삭발식동안 눈물은 안났다.
그냥 저 아래 제주도 선생님들이 슬퍼하는 소리가 울리고, 저 멀리 민주의사회 선생님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고, 눈아래에 떨어진 내 긴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선배님들의 짧은 흰머리카락들이 슬퍼 보이고. 그랬다. 눈물이 나지 않은 건 내 머리카락이 잘리워짐으로 인해 조그마한 것이라도 우리가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삭발 후 단상을 내려오면서 웃었다. 모자를 들고 있다가 건네주던 후배님에게 웃어주고 싶었다. 다만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게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거의 실신 전이셨다.
“내가 니 이렇게 하라고 의과대학 뒷바라지를 했냐? 니가 뭔 투사라고. 그리 할 사람이 없더냐. 아이들에겐 뭐라 설명할거냐” 그냥 죄송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딸아이는 낯선 엄마의 모습에 밤새 악몽에 시달리는지 울어대었다. 아이를 달래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왜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
아침. 진료실에 들어서니 한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어제 TV 뉴스를 계속 봤다고 하신다. “원장님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이 잘되길 바랄게요” 결국 울고 말았다. 많은 선생님들의 격려전화와 메일을 받았다. “전 괜찮아요. 씩씩하잖아요” 머리카락을 잃은 대신 많은 모자와 사랑이 생길 것 같다.
내게 용기를 준 한사람에게 고맙단 말과 사랑한단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평범한 개원의로 다시 돌아와서 망하지 않고 병원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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