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분노뿐이다 (10)

등록 2000.02.24 14:42수정 2003.10.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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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생

나는 결코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은 지독히 싫어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내게 익숙해진 오랜 습관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놈의 습관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듯 그렇게 쉽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런 습관을 누군가 달려들어 어거지로 떼어 놓으려 하면 꼭 탈이 생기고 만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떠난 이후, 줄곧 상태가 좋지 않았다. 조금만 심사가 틀어져도 금방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때로 습관이란 무서운 데가 있어서 그것을 떨쳐 버리려고 애쓰는 사람과 함께 버려지기를 원하는 그악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습관이 얼마나 오래된 것이냐에 따라 그 습관의 그악함도 다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모두 십일 년이 넘는 세월을 학교라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러 없지 않지만, 대체로는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십일 년이란 세월은 그 무엇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길고 먼 시간이다. 더군다나 그 오랜 시간 끝에 내가 다다른 곳이 겨우 학교와의 단절이라니. 나는 묻고 싶다. 당신같으면 그 모든 걸 달게 받아들이겠냐고.

한번 단절을 경험한 인간에겐 그 단절이 또다른 습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결국 단절이 단절을 낳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팔이 잘려 나가고, 다리가 잘려 나간 데다가 마지막엔 목까지 잘려 나가는 그 끔찍한 광경을. 비록 수족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내가 경험해야 할 단절은 그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놈의 썩어빠진 사회와의 단절이다.

내가 지금까지 갖은 핍박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버텨온 것은, 단절을 밥먹듯이 하는 인간, 적어도 그렇게까지 막되먹은 인간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겐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이미 한쪽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간 상태로, 정상인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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