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분노뿐이다 (11)

등록 2000.02.25 12:53수정 2003.10.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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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딱히 학교를 떠났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잘 생각해 보라.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나도 깨끗이 인정했다. 일이 그렇게까지 비꼬일 줄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서로 좋아서 한 짓이라,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 그 여자아이는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고 있었던지라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와 나, 그리고 누이동생은 함께 살았다. 우리 남매는 이미 버려진 상태였고, 거기에 또 한 사람의 버려진 아이를 집 안에 들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을 때까지 그래도 나는 그 아이와 사랑이라는 걸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흔한 일 아닌가? 그렇지만, 정말이지 나는 그 아이가 임신을 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나도 누구 못지 않게 괴로웠다. 나 또한 부모로부터 버려진 자식이었다. 그런 내가 버려진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나 자신도 내가 한 짓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용서를 바랄 뿐이다. 그 모두 내가 뭘 몰라서 저지른 일이다.

그런데 퇴학이라니,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번 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한 가지 가슴 아픈 사실을 깨달았으니, 다시는 그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한번쯤은 속죄의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저지른 잘못을 회피하거나 변명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받아야 하는 죄값에 대해 수긍할 수가 없다.


나는 교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엉터리같은 인간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흔히 내게서 학생답지 않은 사악한 면만을 보려고 하는데, 실제 나는 그렇게까지 헐어빠진 인간은 아니었다. 사람들 모두 제각기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듯이, 나 또한 다른 형태의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좀 남다른 데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교사들이 나를 지독히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더러는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을 전혀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은 설사 선생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 데 반해, 나는 그런 생각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가식을 몰랐다. 성적에 연연해하고 평가에 주눅이 들어 있는 그런 녀석들처럼 거짓된 행동으로 교사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교사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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