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분노뿐이다 (12)

등록 2000.02.26 11:37수정 2003.10.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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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진실과 맞닥뜨려서 자신들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교사들은 어딘가 모르게 좀 맹한 구석이 있었다. 모두 다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본 교사들은 대부분 유머감각이 부족하고, 사교성에 대한 인식이 심하게 굴절되어 있으며,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을 무슨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안주하기를 좋아하고, 그 세계 속에 누군가 변화의 씨를 뿌리려고 하거나 더러 발을 들여놓기라도 할라치면 마치 무슨 더러운 병을 옮기고 다니는 벌레라도 발견한 듯이 서둘러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사정이 이러니, 대화가 가능할 리가 없다.


교사들은 가끔 내게 묻곤 했다. 넌 임마, 집에 애비 에미도 없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감정이 없는, 그래서 무뚝뚝하고 조금은 멍청해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그렇다고 대답하곤 했다. 실제로 내게는 그들이 말하는 애비, 에미가 없지 않은가? 교사들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나온 것이다. 얼마나 우스운 반전인가? 그게 바로 유머라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함께 웃자고 한 것인데, 교사들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교사들은 그런 내 말투와 행위를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싸움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내가 유머감각없이 그저 진지한 것만이 최상이라고 믿는 그런 고리타분한 놈이었다면, 나는 교사들의 그같은 질문에 마땅히 화를 냈어야 했다. 죽은 아비를 욕되게 하고, 집나간 어미를 떠올리게 해서 한창 예민한 나이의 감정을 자극하다니, 그것이 교사로서 할 일인가? 내겐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교사들은 내게 정중히 사과를 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오히려 내게 화풀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내 유머에 줄곧 반항이라는 딱지를 붙여왔다. 내가 그들의 감정과 정서에 어떤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교사들에게서 종종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없는 결벽증을 발견하곤 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학생들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학생들은 전혀 접해 보지도 못한 엄청난 지식의 전달자라고 생각하거나, 학생들과는 같은 차원에 둘 수 없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나는 실제로 겨우 교과서 두께만한 지식으로 수업에 들어와 순간 순간 위기를 모면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교사와 물욕에 절은 인격으로 아이들 앞에 서서 걸핏하면 자신의 가치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몽둥이를 집어들곤 하는 교사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지식으로 말하자면 담당 교과목 외의 과목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깝고, 인격으로 말하자면 평소 잘 참아넘기다가도 때때로 젖먹이만도 못한 저급한 행동을 보이곤 하는 사람들이 교사들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단지 나이 몇 살 더 먹었다는 이유로 나이 어린 학생들로부터 존경심을 구걸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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