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미국사는이야기> 2-도서관에 갔다오면 부자가 된다

미국 사는 이야기

등록 2000.02.26 13:13수정 2000.02.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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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민방위 훈련 때 듣던 것과 비슷한 그런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토네이도' 얘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여기 하늘이 얼만큼 푸른가 부터 얘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말 꺼내기도 그렇고 듣기도 그렇고.


내가 제일 부자가 될 수 있는 곳부터 얘기해야지.
거기가 어디냐고?
도서관.

일단 가기만 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곳, 거기가 도서관이야.
두 애들을 앞세우고 낑낑 거리며 박스로 책을 안고 나오는 일은 내 체력에 부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자다.

한국에 남산 도서관이 있지?
거기는 지금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나올 수 있니?
옛날에 대학시절에 두 권인가 빌려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여기 공공 도서관은 무제한이다.
3주일로 정해져 있는 반납기한만 지키면 30권을 가지고 나가던, 50권을 가지고 나가던 아무도 뭐라고 안해. 반납일 어기면 하루마다 벌금이 붙고 책을 잃어 버리면 책값을 물어내면 돼. 그 뿐이야. 그건 거기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나는 도서관을 갈 때마다 아예 파일 수납용 박스를 차에 함께 싣고 간다.
책을 담아 나르던 커다란 가방이 찢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째 아들 녀석까지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빌려오는 양이 두배로 늘어났기 때문이지.


코를 책에 박고 사는 8살 짜리 큰 딸이 뽑아드는 책과 5살 짜리 둘째 아들이 그림만 보고 무조건 쌓아놓는 책.
그리고,
"Just one more, please-." 하며 하나라도 더 챙겨 넣으려는 만화영화.
(나는 아이들이 한쪽 눈을 찡끗이 감고 please- 말끝을 길게 늘이면 꼼짝 못하거든)
작은아이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서 꼭 어린이용 오디오 테이프까지 몇 개 들고 나와야 직성이 풀려.
거기에 내가 읽을 책들과 남편이 좋아할 만한 CD 몇 장 집어들면 보통 30개에서 40개 분량이지.

그걸 어떻게 다 가져오냐구?
그러니까 박스가 필요한 거야. 3주 분량을 차곡차곡 챙겨 넣을 박스가.
"시간은 돈" 인 이민생활에서 시간 절약하며 알뜰한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이만한 준비가 꼭 필요해.
책은 물론이요 비디오테이프, 오디오테이프, CD를 제한없이 가지고 나오는 거지.
이만하면 부자 아니니? 돈으로 치면 $500 어치씩은 되는데.


그걸 가지고 와서 3주 동안(보통 2주면 해치우지만) 온 식구가 실컷 즐기는 거야.
애들은 비디오와 책을 보며 나는 한국 소설책을 읽으며 남편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그래, 한국 소설책도 있어. 미국 공립도서관에 말이야.
왜냐면 내가 사는 동네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귀넷카운티에 속하거든.
그래서 귀넷 카운티안에 몇몇 도서관에서는 한국 도서 코너도 마련해 놓았어.
여기 둘루스에는 한 2백여권 되는데 이제는 읽을 만한 책은 다 읽었다.
지난해부터는 영 신간이 안들어 온다.
언제 갖다 놓을거냐고 재촉 좀 해야 되겠다.

그리고 몇년전 내가 이용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한가지.

한번은 아이가 원하는 책이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사서한테 부탁을 했지.
컴퓨터로 확인을 좀 해 달라고.
그런데 이리저리 정보를 입력시키던 라틴계 사서 아줌마가 모두 체크 아웃되었다고 한 권 주문을 하겠느냐고 묻는거야.

"Do you want me to order it?"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오더 해준다고? 그럼 새 책을 주문하라는 소린가? 내가 돈을 내야 하는 건가?
복잡하게 돌아갔지.
그래서 여기는 도서관에서 책 주문도 해주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그게 아니라 카운티의 여섯개 마을 도서관이 네트워크로 운영되기 때문에 다른 도서관에 있는 똑같은 책을 내가 원한다면 이쪽 도서관으로 옮겨 주겠다는 얘기였어. 그게.
그래서 그래 달라고 하고 집에 왔는데 다음날 전화벨이 울렸어.

"장성희 씨가 주문하신 책이 도착했습니다. 0월 0일까지 찾아가십시오."

이러니 내가 부자라고 안 할 수 있겠니?

내친 김에 도서관 얘기 하나 더. 다음 얘기는 <나는 잠옷 입고 도서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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