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분노뿐이다 (15)

등록 2000.02.29 11:30수정 2003.10.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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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무겁고 힘깨나 쓸 줄 아는 아이들 몇 명을 불러내 조직을 만들었다. 놈들은 다들 나처럼 퇴학을 당한 주제들이어서 그동안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차에 내가 조직을 만든다고 하자 비로소 제 세상이 왔다고들 느끼는 모양이었다.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들은 시시껄렁한 한 무리의 건달에 불과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고 말 것도 없이 어느 햇빛 화창한 날 오후에, 훔친 승용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는 인적이 끊어진 산기슭의 폐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곳은 내가 한때 집 나간 어미를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그 폐가는 길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가 잡목 숲속에 들어앉아 있어 외부에서는 결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은신처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굳이 그 숲속 폐가에 은신처를 정한 이유는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외형만 중세 성곽을 흉내내 지어올린 모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어미를 찾아 헤매게 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었다. 그 곳에서는 그 더러운 욕정을 참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이 밤낮으로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다.

처음 며칠동안 나는 그저 산기슭에 걸터앉아, 고불고불한 산자락을 반듯하게 깍아서 만든 이차선 도로 위로 도시의 지역 번호를 단 고급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그러자니 자연히 나는 집나간 어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여자가 왜 우리 남매를 버리고 떠나야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도로 위를 질주해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 안에 퍼질러 앉은 여자들 중에 여전히 그 여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며칠 뒤, 우리가 도로가에 숨어 기다린 사람은 오십대 후반의 살집이 많은 남자와 몸매가 사진 속의 모델같이 허리가 가느다란 이십대 초반의 여자였다. 두 사람은 대기업 임원과 여비서와의 관계였다. 우리는 그들이 타고 온 승용차를 버려둔 채 두 사람을 숲 속의 어두운 계곡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 초로의 늙은이가 좀 더 나이 많은 여자를 대동하고 있었다면, 그냥 돈 몇 푼 뜯어내고 보내 줄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 늙은이를 계곡 안으로 깊이 밀어 넣은 뒤, 입 밖으로 터져나오는 비명을 되삼킬 정도로 흠씬 두들겨 주었다.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매질을 끝내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뒤에도, 나는 그 늙은이를 두들겨 패는 일에서 좀처럼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우리 남매를 버리고 도망간 그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늙은이는 점차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주위에 늘어서 있던 아이들이 제때에 나를 뜯어 말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매질을 끝내고 나서 나는 그 늙은이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러자 늙은이는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이 네 주제에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쓸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 봐야 그 늙은이에겐 한 달치 술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었다. 나한테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큰 돈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쯤 나는 사실 돈같은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양이면, 사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오로지 그 늙은이의 강낭콩 같은 고환을 비둘기똥처럼 하얗게 짓밟아 놓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러 아이들까지 끌어들인 마당에 내 생각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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