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팔아 산 그 핸드폰

내 손에 쥐어준 장애인 카드에 담긴 사랑

등록 2000.03.22 13:32수정 2000.03.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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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도 핸드폰 사줘. 요즘 삐삐 가지고 다니는 애들이 어딨어. 정보화 시대에 핸드폰은 필수야 엄마"


99년 3월. 삐삐를 가지고 다니던 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마련하는 핸드폰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처음에 핸드폰은 사치처럼 여겨졌었다.

폼재듯 핸드폰을 사용하며 거리를 걷는 애들을 보면 다 겉멋 들어서 하는 행동처럼 보였고 삐삐를 가지고 있는 나는 역시 모범생이라고 나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핸드폰 가진 친구들에게 역시 삐삐가 더 인간미 넘치는 거라고 말하며 난 아직도 인간미 어린 삐삐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었다. 삑삑' 울어대는 삐삐를 보면서 번호를 확인하고 그 번호의 주인공이 뭐라고 내게 남겼을까 기대하면서 듣는 그 맛이 최고 아니냐며 아이들에게 반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에 다른 사람들과 사회는 동조해 주지 않았다. 어제 한 친구가 핸드폰을 장만하면 오늘은 두 명의 친구가 핸드폰을 장만했으며 모든 선전에서는 온통 핸드폰 선전 뿐이었다.

삐삐에 대한 광고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것이 전부였다.
"연락처 좀 가르쳐 주세요"
"012-1181-1232 예요"
"선배? 핸드폰 없으세요?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도 있어요? 이번 신입생들도 핸드폰 없는 애들이 거의 없던데. 더구나 선배는 학교 신문사에 있으니까 빨리 빨리 연락해야 하지 않아요?"

더이상 삐삐가 통하지 않았다. 삐삐를 가지고 있으면 마치 난 저쪽 문명의 바깥 세계에서 온 사람으로 취급을 당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 "그래 정보화 시대에 핸드폰은 필수야.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누가 삐삐치고 그것 확인하고 그래. 그것은 시간과 돈을 두 배로 들이는 일이야"로 내가 핸드폰을 가져야 되는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에 이르렀다.


난 당장 핸드폰을 사고 싶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괜찮은 것으로.
"엄마 핸드폰"

난 그 날부터 엄마에게 핸드폰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엄마는 "대학생이 무슨 핸드폰이 필요하니?"하면서 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평소에 말씀도 잘 안하시는 아빠가 '똑똑'내 방문을 두드리셨다. 그리고 들어오셔서는 나에게 뭔가를 내미시고는 나가셨다. 아빠가 내게 건네주신 것은 장애인 카드와 흔들리는 글씨로 몇줄 적힌 편지였다.

"성이야, TV보니까 요즘 대학생들도 다 핸드폰 가지고 다닌다고 그러더라. 넌 특히 학교 신문사에 있으니까 연락하고 올 때도 많지? 아빠가 건강하면 우리 성이 얼른 핸드폰 사줄텐데. 내가 신문에선가 어디서 보니까 장애인 카드 있으면 가입빈가가 면제된다더구나. 그리고 기계도 그냥 준다고 하는데 이거 가지고 가서 한번 알아보렴. 미안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아빠는 늘 무뚝뚝하셨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빠는 사업을 하시다가 사기를 당하셨다. 그 충격때문에 고혈압으로 쓰러지셔서 중풍이란 고약한 병으로 거의 7년이란 긴 시간동안 자유롭게 움직이시지 못한다.

아빠는 그 때부터 말씀을 잘 하시지 않으신다. 아빠가 말씀을 하셔도 못 알아들을 때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 아빠는 장애인이 되셨다. 그렇게 키도 크고 덩치도 건장하셨던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도 몸무게가 적게 나가신다.

그런 아빠가 철부지 딸이 핸드폰 사달라는 말에 얼마나 맘이 아프셨으면 장애인 카드를 내놓으셨을까. 그 생각에 너무 철부지같은 내가 너무 미웠다.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 막내딸인 내게 늘 뭔가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빠가 건강하시다면 직접 사다가 주셨을지도 모를 핸드폰을 아빠는 장애인 카드로 사주려고 하셨던 거였다. 난 그 카드를 쉽게 사용할 수가 없었다. 아빠를 파는 것 같아서. 그런 아빠는 내 맘을 읽으셨는지 "얼른 핸드폰 장만해서 아빠 구경시켜 달라"며 나를 조르기 시작하셨다.

'그래 이게 아빠가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성이를 위해 뭔가를 하셨다는 그 뿌듯함이 딸인 내가 아빠에게 드릴 수 있는 선물인지도 몰라' 난 이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가 핸드폰을 장만했다. 그리고 개통되자마자 아빠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다.

"아빠, 성이 핸드폰 했어. 잘 들려?"
그 날, 아빠는 내 핸드폰을 꼼꼼이 뜯어보시고 또 어루만지셨다. 딸에게 뭔가를 해주셨다는 그 뿌듯함에. 난 세상에 하나뿐인, 값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그 핸드폰을 장만한 지 이번 달로 꼭 1년이 된다.

그 핸드폰은 지금 내 보물함에 잘 간직되어 있다. 지난 MT때 물에 빠진 이후로 잘 되지 않아서 다른 기계로 어쩔 수 없이 바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핸드폰의 사용자는 여전히 우리 아빠다.

난 이 핸드폰으로 매일 두번씩 아빠와 엄마랑 통화를 한다. 핸드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 점심은 드셨는지 아빠에게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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