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386은 따로 있다

[연재-손석춘의 언론비평3] 술판에서 쓴다, 386정치신인들아 들어라

등록 2000.03.23 14:48수정 2000.03.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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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미디어다. 원로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언론학'이다. 술판에서 헛수작하는 이들이라면 새겨야 할 경구다. 더 이상 낭패당하지 않으려 술을 끊었을 때다. 백기완 선생이 벼락처럼 꾸짖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 사람아! 상상력이 없어져!

두 분과 독자들께 결례를 무릅쓰고 아침부터 술타령을 술술 푸는 까닭은 물론 있다. 386(30대로 80년대 대학을 다닌 60년대생) 젊은 벗들과 여남은 차례 술멍석을 편 변명이다. 기존 정치권에 `수혈'된 386들을 바라보는 `386여론'이 궁금했다. 독특한 `미디어' 탓일까. 다소 격앙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386은 따로 있다. 순진하게 물었다. 아름다운 386을 대표할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젖은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후배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대표는 없어요.

그랬다. 바로 그가 아름다운 386이었다. 그는, 아니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를 대표한다는 후보들이 선거공간에서 아무런 진보적 의제도 쟁점화하지 못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했다. 수구정객과 수구언론의 색깔공세 때문일까.

실제로 386들은 `깨끗한 정치'만 상표처럼 내건다. 정작 천박한 정치수준을 한 계단 높일 정책적 차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그런 기대 자체가 턱없는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386의 `독설'을 들어보자.

"그들은 과거만을 팔고 있다. 아니 이미 다른 386들을 착취하고 있다. 보라. 전대협의장 명함을 내세우는데 그들 중에 누가 당시 밤새워 함께 고민했던 학우들에게 의견을 구했는가. 의장으로 추대하며 민중의 아픔을 대변하라고 그들을 위해 밤새워 불지폈던 이들에게 오늘 그들은 누구인가."

또 다른 386도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망친 자들이다. 운동의 관료화가 오늘의 침체를 불렀다. 학생운동을 망쳐놓고 이제 보수, 게다가 수구정당까지 들어간다?"

"조직선을 타고 들어간 후보가 있는가. 모두 당선 가능성 따라 가지 않았는가. 지역과 색깔이라는 봉건적 잣대가 지배하는 정치를 참으로 개혁하겠다면 민주당 후보로 영남에 나서거나 민주노동당에 합류해야 하지 않은가.


당선만을 좇아 지역구를 선택했다. 그 점에서 오히려 노무현이 더 개혁적이다. 김상현이 구시대 정치인이라고? 그도 30대엔 그러진 않았다. 그 시절 그는 목까지 흙에 파묻히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386들이 40·50대가 되었을 때 무엇을 할지 눈에 보인다."

물론 386세대의 국회진출은 16대 총선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을 비롯해 줄지어 기존 정당의 문을 두들겼다. 한 386은 사실 그들은 `얼굴마담'이었다고 회고했다. 하기야 그들이 얼굴마담이었다면, 다시 대중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과거와 달리 그들의 뒤엔 아무도 없다. 과연 그들은 오늘 누구를 대변하는가. 기존 정치권 진입 또한 힘을 모아 갔는가. 아니다. 개별적 수준에서였다. 총선 뒤에 갈라진 그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도 회의적이다.

심지어 그들은 기존 여야 정당의 얼굴마담으로 나서기도 했다. 80년대 그들을 학생운동의 얼굴로 내세운 이들은 지금도 흔들림없이 민주와 통일의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신문과 방송이 그들을 비켜가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질문이었다. 어차피 출마한 마당에 당선이 정치개혁을 앞당기지 않겠는가. 뜻밖이었다. 장담할 수 없단다. 술은 과연 미디어인가. 당선이 꼭 당위만은 아니라는 그도 한잔을 더 비운 뒤 마음을 비웠다. 떨어지면 더 추하지 않은가요? 아무래도 낫기야 낫겠죠.

출마한 386들에게 권한다. 선거공간에서 과연 오늘의 모습이 최선인가 성찰할 때다. 그들이 왜 선거에 나왔는가를 적잖은 사람들이 깨닫고 싶어한다.

수많은 386들이 삶의 현장 곳곳에서 `깨끗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아름다운 벗들의 여론에 귀 모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3월 23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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