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발표 후, 전국의 표정

"국민을 어린애로 보나?" vs "총선용이라 보기엔 너무 역사적"

등록 2000.04.10 11:28수정 2000.04.1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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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오전 10시 정부종합청사에서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6월 12일 남북정상회담을 갖겠다고 발표했다.

오마이뉴스는 광화문에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을 전격 발표한 것과 총선을 3일 앞둔 이 시점에 발표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을 들어 보았다. 또한 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의 의견도 들어 보았다.

오전 10시 10분 광화문 네거리의 초대형 멀티비전에선 정부종합청사에서 진행되는 기자회견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시민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쳐 갈 뿐이었다.

광화문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난 이종실 씨(66세. 무직). "해야지 하는 거지 그놈들(북한)을 어떻게 믿어. 남북정상회담 하겠다고 해놓고 땅굴 파는 놈들 아냐. 못 믿겠어. 그리고 왜 지금 발표해 나쁜놈들...."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이미숙(32. 회사원)씨.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라도 남북의 관계 정상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광화문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고 있는 이미선(38) 씨. "선거에 임박해서 뭐하는 짓이야. 정치에 관심 없어요. 어차피 찍을 사람도 없어서 선거도 안 할 참이었어요."

노점상을 한다는 40대 중반의 아저씨. "무슨 상관이야. 관심 없어. 나는 그런 거 몰라도 돼."

광화문에서 10여 년 동안 분식집을 운영했다는 40대 아주머니. "먹고살기 힘든데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정부에서는 IMF 탈출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죽겠어요. 정치인들이 잘해야지. 난 투표 안할 거예요."


강북 삼성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던 김병찬(58. 중소기업 사장)씨. "눈 가리고 아웅이지. 국민을 어린애로 보는 것도 아니고, 총선을 앞두고 무슨 짓이야. 민주당이고 한나라당이고 못 믿겠어. 나는 강북인데 당에 상관없이 인물 보고 찍을 랍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이번 발표에 대해 환영은 할 일이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기자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치뿐 아니라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예상 밖으로 무관심했다. 기자가 광화문에서 만난 시민들의 열의 여덟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선거 끝나고 발표했으면 200점인데...남북 정상회담 대전충남 시민반응 - 심규상 기자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지자 대전.충남 지역 시민들은 환영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하필 왜 선거직전에 발표해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느냐는 아쉬움을 대부분 나타냈다.

대전에 사는 조남주(28,중구 문화동)씨는 "냉전의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한 정부당국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일로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씨는 "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것은 정부 스스로 총선용이라는 비난을 자처한 일로 적절치 못했다"고 덧붙였다.

충남 예산에 사는 성지원(36, 예산군 예산읍)씨는 " 정부의 햇볕정책과 긴장완화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낸 것으로 본다"며 "잘 성사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성씨는 이어 "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발표해 통일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과 정상회담을 정말 차분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충남 부여에 사는 복진국(31, 부여군 임천면)씨는 " 잘됐다" "정상회담이 잘 성사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복씨는 일부에서 발표시기를 비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남북 정상회담은 디제이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인만큼 발표시기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충남 공주시에서 고려수지침 가게를 운영하는 정선원씨(41)는 " 하루 빨리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는 점은 이의가 없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선거가 끝난 후 발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느냐"며 아쉬워했다.

차수철씨(38,천안시 다가동)는 " 남북간의 냉전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차씨는 이어 " 설령 발표 시점이 매끄럽지 못했다하더라도 이를 문제 삼기보다는 어떻게 잘 성사시키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차씨는 "이 문제가 어떤 이유로도 정쟁의 수단이 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서천의 오모씨(45.충남 서천군 서천읍)는 " 바람직한 일로 남북간의 골깊은 감정을 허물어트릴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이후 돌발변수로 또다시 회담이 무산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며 "발표시기가 좀 이르거나 선거후로 좀 늦췄더라면 하는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오수용씨(주부,대전시 중구 중촌동)는 "동네의 실향민들이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며 "너무 잘된 일"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오씨는 "선거가 끝난 후만 발표했어도 동네 애엄마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었을텐데 선거와 맞물러 오해 받을까 봐 얘기하고 다니기는 눈치보인다"고 밝혔다.


왜 정부는 떳떳하지 못한가?...전남 여수 시민들의 반응 - 박성태 기자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한 오늘 오마이뉴스는 '왜 3일을 못참는가'라는 지적기사를 내 보냈다. 과연 오마이뉴스가 파악한 민심대로인지 아닌지 파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남단 이곳 여수의 민심, 가능한 친여인사가 아닌 자를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보았다.

결과적으로 선거용으로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족의 화해와 선거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하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실 민주당은 대북관계를 이전부터 일관되게 진행해오지 않았는가, 다만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천상국(여수시의회 의원)씨는 오늘 발표된 남북정삼회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또한 그는"민주당에서 이번 일을 선거와 전혀 무관한 것처럼 발뺌하는 것은 국민을 우둔하게 여기는 처사에 다름아니다. 왜 떳떳하지 못한가, 차라리 선거를 통해 이러한 일을 과감히 심판받겠다고 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소장은 "선거용을 떠나서 좋은 일이다. 냉전시대 종식차원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고 말하고 다만 "극우세력들을 너무 자극해 북한을 자극한다면 또다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이렇게 몇백년을 가도 좋다는 말인가, 흡수통일도 적화통일과 같은 논리다. 민족공동체의 문제로 대국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해 극우세력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가져가는가가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중요한 문제임을 지적했다.

또한 16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김재출 후보도 "선거를 떠나 분단의 문제는 장애요인이다. 분단된 상태에서 세계와 싸우는 일은 한계가 있음을 하버드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 고통당해서는 안된다. 총선과 별개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환영한다"고 밝혀 정상회담 발표를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별개로 받아들였다.

한편 백충화 기자(전남일보사 여수주재)는 "햇볕정책의 결실로 볼 수 있지만 시점이 문제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차라리 인정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말했으면 쓸데없는 공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며 정부가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독점하는 구태를 버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대체로 정상회담을 선거와 별개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정책을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소신있고 투명하게 발표하지 못한 점은 비판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정상회담 발표는 16대 총선의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관권, 금권을 동원한 선거와 정부의 선심성 공약으로 유권자의 의지가 이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계의 반응 - 연합뉴스

북한전문가인 세종연구소 연구원 이종석 박사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일로 분단반세기동안의 반목과 갈등의 시대를 평화와 화해협력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것'이라며 '총선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역사적이고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외국어대 법대 이장희교수는 '적대관계의 두 국가 원수가 상대의 땅을 초청받아공식적으로 오간다는 것은 남북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시킬 수있는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하용출교수는 '그동안 여러번 말이 나왔지만 실제 정상회담이열린다니 상당히 충격적'이라며 '햇볕정책의 결과로 착실히 추진해서 이번 정상회담 이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진일보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43)교수는 '과거 다른 분쟁사례들에서 해묵은 갈등관계 가 최고 당국자 상호방문을 통해 많이 진전된 전례 등을 보더라도 일단 정상회담이예정대로 열린다고 한다면 남북간에 해결해야할 수많은 현황 해결에 대한 효율적방 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실련 위평량 정책부실장은 '햇볕정책의 꾸준한 실천이 낳은 결과라고 보며 민 족이 하나로 되는 교두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하지만 외교적으로 신중하 고 자주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상생하는 `윈-윈 전략'으로 남북문제를 풀 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환영의 뜻을 표하며 '민간교류 확대 분위기가 조성될것으로 기대되며 전교조도 그동안 정치적 문제때문에 검토만 하고 보류해왔던 남북 교원교류가 원만히 추진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남북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미치기를바라며 선거용이나 정권유지용이 아니기를 바란다'며 '남북대치상황이 빚어낸 국가 보안법이 사라지고 앞으로 남북노동자간 교류도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직원 오미란(29.여)씨는 '생각도 못했던 남북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니잘 믿어지지 않고 이로 인해 통일로 가는 길이 좀 더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며 '대 통령이 평양으로 직접 간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북한도 국제사회의고립을 인식할 것이기때문에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대표 박맹호(67)씨는 '대충 예감을 하고 있었지만 놀라운 일이며 부단한노력이 있었기에 정상회담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며 '다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 기에 발표가 이뤄진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박성철(47)씨는 '정상회담 자체만으로 큰 일이다. 남북간 화해와 통일에물꼬를 트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보이며 갈등과 긴장, 불신이 상당히 누그러져 화 해조성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상욱(31.인천 계양구 병방동)씨는 '흥분은 되지만 선거전때 과거정권 처럼 북한 관련 소식을 접해 씁쓸한 느낌'이라며 '하지만 정상회담이 통일의 첫걸음 이 되기를 바라고 정치성을 배제하고 기아문제, 이산가족 등 인도적.민족적 차원에 서 두정상이 가슴을 열고 대화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 실향민들이나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북정상회 담 소식을 접하는 마음과 남달랐다.

이산가족 김경애(68.여.부산 동래구 남산동)씨는 '열세살때 혈혈단신으로 남에내려왔고, 북한에 아버지 오빠 여동생이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돼 죽기전에고향땅을 한번 밟아보고 가족들 생사라고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이 황해도 연백으로 한국전쟁때 월남했다는 영등포시장 청과물 도소매상인변우건(57)씨는 '마치 통일이 곧 될 것같은 기분'이라며 '어릴때 뛰놀던 고향으로갈 것을 생각하면 절로 흥분되고 기쁜 마음이 생긴다'고 기뻐했다.

서울 봉천동 만남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출신 김석형(88)씨는 ' 남북이 만나는 것은 필연이며 당연히 올 것이 왔다'며 '우리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 으로 갈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며 환영했다.

민변 통일위원회 김인회(金仁會)위원장은 '발표 시기가 다소 아쉽지만 남북정상 회담이 그 동안 민간차원에서 시작됐던 경제협력이나 인적교류를 질적으로 한 단계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총선시민연대는 공식논평을 통해 '정부는 선거와 통일을 혼동하지 말라'고 전제, '우리도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지만 두달씩이나 남은 회담을 선거를 사흘앞둔미묘한 시기에 발표한 것은 백번 생각해도 잘못된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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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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