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새로운 패권국, 중국

제1부 3편 'No'라 말할 수 있는 중국외교

등록 2000.04.24 02:56수정 2002.10.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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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의 주유고 중국대사관 폭격과 분노한 중국젊은이들

1999년 5월 8일 아침 기자는 평소처럼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앞거리에 있는 노점식당에서 중국인들과 같이 간단한 자오찬(早餐, 아침식사)를 먹은 뒤 발길을 학교내의 도서관으로 돌렸다.

일반 중국의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기자의 학교였던 중국정법대학(中國政法大學)은 캠퍼스 내에 강의실과 대학본부, 도서관, 체육관, 운동장, 교사-학생 기숙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거대한 딴웨이(單位, 사업단위)이다.

보통 아침 8시면 강의가 시작되어 분주한 평일과는 달리 토요일 - 중국은 토·일요일 모두 공휴일이다 - 아침은 여느 때와는 달리 오가는 인적이 드문 한가로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유롭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는 기자의 눈에 같은 과의 한 중국인 학우의 모습이 보였다. 웬일인지 긴장한 모습으로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아닌 대학본부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에게, 기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다가가 의례적인 아침인사를 건넸다.

기자와는 형-동생으로 불릴 정도로 친한 그가 기자를 알아보고는 달려와 빠른 어조로 "큰 일이 일어났다"고 숨차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보통 큰 일이 아니면 잘 격동을 하지 않은 중국인이었기에 기자는 이상하게 여기었는데, 그에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미국놈들이 우리의 대사관을 폭격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바로 작년 내내 중국인들을 격분시킨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주유고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이 일어났다.


고향에서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이미 중국공산당원이 되었을 만큼 인재로 학교내 학생회 간부를 맡고 있던 그는, 방금 학교 공산당위원회와 공칭투안(共靑團, 공산주의청년단) 책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하면서 급히 학교내 당위원회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그 날 하루 내내 사태는 숨가쁘게 돌아갔다. 베이징(北京)의 공산당 중앙과 신화(新華)통신을 비롯한 관영언론들로부터 TV, Radio, 신문호외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국 각지의 작업단위와 학교의 젊은 노동자와 학생들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시위를 조직하여 격렬하게 전개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수도로 외국 대사관이 몰려있는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上海), 티엔진(天津), 광저우(廣州), 청뚜(成都), 우한(武漢), 시안(西安) 등 젊은이들이 모여사는 모든 도시에서는 반미-반NATO시위가 불길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관제시위인가 아닌가

그 날 이후 한달여동안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이 반미 시위의 열풍은 한동안 중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에게는 공포심을 주기 충분했다. 특이나 나흘동안 대사관에 갇히어 중국인들의 성난 공세를 받았던 북경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 일부 시위군중에 의해 일부 건물이 불탄 청뚜의 총영사관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1900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당시 서방제국주의를 몰아내기 위한 의화단원의 봉기에 의해 중국 전역에서 적지 않은 서양인들이 살해되었고, 미국영화 <북경의 50일>과 같이 많은 외국인들이 한동안 베이징에 고립되었던 몸서리처지는 과거가 기억났던 것이다.

이런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 분노한 중국 인민의 시위대 앞에 당혹해 하기는 중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만이 아니었다. 한창 중국에 대해 외교적 공세를 펼치고 있었던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언론매체들 또한 자신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시위의 전개 양상에 있어 중국정부의 개입이 뚜렷해지자, 서방과 일부 일본 언론들은 시위의 성격과 전개과정, 배후 등에 대한 평가를 시작하게 된다.

그 논조는 대부분은 이른바 <콕스보고서>로 촉발된 미국 내 반중 분위기와 WTO 가입을 위한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심한 굴욕을 맛본 중국정부가 배후에서 일으킨 관제시위였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대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시위를 전개했다고는 하지만, 경찰이 전혀 시위대를 저지하지 않은 점, 정부측에서 시위대의 이동에 버스를 제공하면서 도운 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이 TV석상에 나와 학생들의 시위를 지지발언을 한 점 등을 들면서 민중시위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한 서방 언론들의 시각이 결코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허나 모든 학생과 노동자의 시위를 관제시위로만 몰아 부칠 수 있을까? 비록 기자의 중국인 학우들이 공칭투안의 주도적인 지도 아래 시위를 참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면에는 근원적인 반미(反美)주의와 중화(中華)민족주의의 기류가 숨어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이후 1세기가 넘도록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국토를 유린당한 중국인들에게 반제국주의와 국가적 통합, 주권의 수호, 실지회복 등의 민족주의적 특성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더구나 1992년 소련붕괴 이후 탈냉전의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The Lone Superpower)인 미국의 독주와 연이은 '중국 패주기(China Beating)'는 중국인의 강한 자존심을 건들이기에 충분했다.

1999년에 펼쳐진 미·중간의 일진일퇴

1999년 3월은 미국에 살고있는 수많은 중국계 미국인(Chinese American)에게는 끔찍한 나날이었다. 미국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콕스보고서>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연일 보도하면서, 미국내의 살고있는 수많은 중국인을 적국의 간첩과 동일시 해 버렸기 때문이다.

미의회 외교특별위원회의 의장인 콕스 하원의원이 주동이 되어 수년간의 시간을 들여 작성된 7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중국이 미국내 '협조자'의 도움을 얻어 미국의 최첨단 핵무기개발기술을 훔쳤다는 내용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걸음마 단계였던 중국의 우주항공산업 기술과 핵무기관련기술이 단시일내에 진보를 거듭한 내면에는 대만계 화교과학자 리원허(李文和)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중국인 간첩이 최첨단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것이 이 <콕스보고서>의 주장이다.

<콕스보고서>의 출판 이후 미국 공화당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언론의 '중국때리기'는 미국의 대선 레이스와 연관되면서 중국정부와 현 클린턴 미행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공화당 의원들과 부시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한 미국 내 반중세력은 중국이 미국과는 가치관이 전혀 다른 가상적국임을 환기시키면서 대대적인 대중국 공세를 펼친다.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위해 공산당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4월에 친히 미국을 방문해서 많은 양보안을 선보였던 주롱지(朱鎔基)의 노력 또한 무위로 돌아가고 말 정도로 미국내 반중 분위기는 극에 달했던 것이다.

하지만 5월 8일에 터진 미군이 중심이 된 NATO의 주유고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중국정부와 일반 민중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대규모 반미시위를 촉발케 하게 된다.

즉 인권문제를 들먹여 2000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무산케 한 점과 리원허 간첩사건을 내세워 중국정부를 압박한 점, 자신들의 70대 노총리가 직접 미국에 가 최대한의 양보안을 선보였는데도 WTO 가입에 동의를 하지 않은 점, 평소 사사건건 내정문제라 여기지는 인권과 티베트문제에 간섭한 점, 대만의 독립은 막후에서 지원하는 인상을 보이는 점 등 그동안 미국에 쌓인 반감을 한꺼번에 분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세로 몰리었던 중국정부의 미국에 대한 외교공세 또한 거세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미국에 NO라 말하는 중국외교

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맞이하여 전개하는 중국외교의 방침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일초 다강체제가 아닌 다극화체제(강대국간 세력균형)로 인식하고 초강대국 일국(미국)에 의해 세계질서가 지배되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범세계적 문제 해결에 있어 대국으로서 책임있는 행동과 여타 강대국들과의 세계 경영에 동참하면서 국가적 위상을 제고하고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셋째는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구호인 평화공존 5원칙(互相尊重領土主權, 互不可侵, 互不干涉內政, 平等互利, 平和共處) 및 독립·자주·평화 외교정책을 기초로 실사구시 외교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목표에 있어 가장 큰 외교 대상국은 역시 미국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정치·군사적 패권국인 미국을 상대하기 위한 중국의 외교정책은 '16자원칙'으로 대변된다.

1989년 티엔안멘(天安門)사건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신뢰를 증진하고 문제를 감소하며 협력을 발전하고 대립을 회피한다(增加信任·減少麻煩·發展合作·不 對抗)"라는 '16자원칙'은 대립과 긴장을 되풀이한 중-미 관계에 있어 미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국 나름대로의 고민을 엿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국은 사안에 따라 미국의 패권주의적 외교정책에 대한 강한 비토권을 행사하면서,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분명한 'No'의 입장을 표하고 있다.

1996년과 올해 3월에 있었던 타이완(臺灣)총통선거에서도 이런 중국의 의지는 분명했다. 비록 대만이 민중의 여론에 따라 미국을 방패막으로 하여 독립의 길을 걸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정부와 중국인민의 여망과는 다르기에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저지를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지도부의 확고한 국가통합과 엄격한 국가주권 수호 의지는 대단히 강하다. 이는 서방제국주의에 의해 치욕을 맛보았던 연유로부터의 역사적 교훈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발전이 급선무인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도움과 협조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도 유엔과 다양한 국제무대를 통해서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주는 실리 위주의 대미외교를 펼쳐 나갈 것이 명확하다.

이에 따라 1998년 장쩌민 국가주석의 미국방문과 1999년 클린턴 미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합의된 중국과 미국간의 21세기를 향한 "건설적.전략적 동반자관계(Constructive Strategic Partnership)" 추진 노력도 21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기 위한 패권 다툼 속에서도 중-미간의 팽팽한 긴장과 실리적 협력은 지속될 것이다.

아시아의 패주 자리를 향한 일본과의 경쟁

현재 중국의 대아시아 외교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중국이 경제적으로 경이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 경제의 기둥인 일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서는 순조로운 개혁개방을 이끌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중국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총생산(GDP)에 있어 무역과 외국인직접투자의 비중이 큰 중국의 입장에서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자 미국 다음의 외국인직접투자(FDI)국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중국으로선 상당히 중요하다. 허나 근래 들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대만독립을 지원하는 일본 극우파의 행보와 군국주의의 부활 움직임, 띠아오위타이(釣魚臺)를 둘러싼 영토분쟁 등이 두 나라간의 긴장을 형성케 하는 외교 현안들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중국으로서는 일본의 대만과 티베트문제 개입을 누구보다도 강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와 연관된 일본내 극우세력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또한 중국인들의 비판은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일본의 경제적 도움이 필요했던 시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시점에 이른 중국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일본의 망동을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중국 내 시각의 저변에는 인민들의 본능적인 반일 감정에 기인한다.

비록 지금의 겉모습은 중-일 양국 정부 모두 공존공영을 위한 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중국 외교방침의 일환인 구동존이(求同存異, 의견이 일치하는 문제부터 해결후 다른 문제 해결한다)정책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허나 띠아오위타이와 같은 민감한 외교현안들은 언제든지 수면 위에 오를 '뜨거운 감자'이다. 또한 일본 사회 내에 형성된 '중국위협론'이나 '중국혐오론'과 같은 반중국 기류는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미묘한 긴장을 지속시킬 전망이다.

우리에게 대중국 외교전략은 있는가

현재 국제정세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고 있다.
신경제를 모토로 하여 자국이기주의를 더욱 앞세운 미국과 나날이 커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 발언권을 높여가는 중국,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얻으려는 일본, 경제통합의 거대한 실험을 진행중인 EU, 러시아 대민족주의의 움직임을 키워나가는 러시아 등 강대국이 둘러싸인 한반도의 현실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우리의 대중국 외교는 어떤 전략을 세워나가야 하는가?

지난 2월에 발생한 탈북자 강제송환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경제적으로 서로가 필요로 하는 한-중 두 나라이지만, 정치·군사적으로 중국이 북한의 입장에 경도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중국에 대해 우리는 통일을 대비한 정책을 다원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나날이 커져가는 중국의 존재를 다시금 자각해서 중국의 WTO 가입으로 인한 세계무역질서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한국에서 오는 손님에 더 큰 시간을 낭비하는 지금과 같은 우리 '의전외교'의 구태를 하루빨리 벗어 던지지 않는 한 영원히 중국의 외교전략에 끌려다닐 위험성이 농후하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우리의 외교적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 다음 기사 예고
-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2000년 4월 30일에 나갑니다.
- 제 1 부 4편 - 종이호랑이에서 진정한 군사강국으로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 예고
-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2000년 4월 30일에 나갑니다.
- 제 1 부 4편 - 종이호랑이에서 진정한 군사강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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