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으로 인생을 바꾼 이들이여, 초심으로 돌아가자

<5.18술자리 파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등록 2000.05.28 20:07수정 2000.05.2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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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광주항쟁 20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가라오케에서 술자리를 가진 것이 뒤늦게 밝혀져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그 자리에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청년정치인들이 다수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뜻있는 국민들에게 '부르터스 너마저도'라는 배신감을 더욱 증폭시킨 요인이 된 것 같다.

요 며칠새 인터넷과 언론에 비쳐지는 국민들의 질책과 꾸지람은 다시 한번 그들이 공인으로서의 신분을 잠시 망각하고 얼마나 경솔한 행동을 하였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제 막 정치활동을 시작하려는 새내기 정치인에게 미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련일 것이나 오히려 이 꾸중 속에서 교훈을 제대로 배우고 정치를 해나가는 자세를 가다듬는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배우느냐일 것이다. 자구적 진실에 집착하다가 전체적 감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구차한 변명이나 소소한 해명에 매달리지 않을 것을 권유한다. 약간의 사실을 교정한다 하더라도 광주의 영령을 생각해야 할 시간에 음주가무를 즐긴 원래의 사실에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진전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엄청난 동력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선 80년 5월 광주정신이 화석화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의 생명과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기본으로 했던 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이 고동치는 맥박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확인했다.

직접 광주에 내려가보지 못했던 필자로서는 전야제의 열기를 느낄 수는 없었으나 인터넷에 올라온 많은 항의의 글을 접하면서 광주항쟁의 정신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80년이후 지난 20년은 많은 기복으로 점철된 나선형의 역사였다. 80년 5월항쟁에서 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에 이르는 엄혹한 기간동안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고 민주화대열에 뛰어들었다.


무시무시했던 고문의 공포와 탄압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화투쟁에 투신한 것은 이념의 힘이 아니라 광주항쟁 정신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시기 투쟁의 일선에 선다는 것은 곧 죽음조차 감수할 각오를 필요로 했던 시절이었다.

그뒤 87년 대선에서의 좌절이후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사회도 많이 변했고 80년 민주화세대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광주학살을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지금 공식적으로 면죄부를 받아 활보하고 있고, 진상 역시 안개속에 묻혀있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운동의 양대세력인 동교동과 상도동은 차례로 군사쿠데타세력과 제휴하여 정권을 잡았다.


재야운동권에서 근본주의적 변혁노선을 주장했던 세력은 현실정치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아웃사이더로 철저히 전락하였다. 왕년의 재야지도부 출신 정치인 누구도 자신의 현실과 정치적 명분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굴곡진 정치역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80년대 대학생으로 가장 치열하게 민주화대열에 앞장섰던 일군의 청년정치인들이 비록 기성정당의 힘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회에 진출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청년정치인이라 해서 순결무구한 상태가 아니다. 그들도 낙하산공천의 혜택을 입었으며, 밀실공천의 과정을 거쳐 어렵게 조직책을 따냈다.

가치관이 전도되는 혼란속에서 광주항쟁의 정신은 점차 화석화되는 과정을 밟는 것 같았다. 사회를 떠받쳐줄 도덕적 기준이나 가치가 망가지는 과정속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나 정치권의 자정능력을 회복할 전망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청년정치인 역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단번에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정치개혁과 정치적 비젼을 위해서 매진할 각오를 세우고 그들의 포부를 국민들에게 밝혀왔다. 이 와중에 터진 술자리 사건은 일거에 이들의 순수함과 의지를 의심받게 만들었다.

정치권 상층부가 국민들에게 비젼을 못주고 오히려 실망을 가중시키는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 저류에 민주적 역량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하여 확인하게 된다.

세칭 386 세대 국회의원에게 이토록 국민들이 애절할 정도의 기대를 걸고 있을 줄이야. 바로 이 점이 핵심이다. 비판과 매서운 꾸중이 나오는 것은 기대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임수경씨의 문제제기 역시 당신들마저 이래서는 안된다는 애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점에서 나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자신의 삶의 기초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동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언론에서 나오는 표현중에 사실과 다른 표현이 하나 있는데, 제3의 힘이 386세대의 모임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아직까지 구성원의 대다수가 30대 청년인 것은 맞지만, 이 단체는 기본적으로 세대를 넘어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하는 정치단체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따라 광주항쟁의 정신도 바래져가는 느낌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하여 항쟁의 정신을 각자의 삶속에 되살리고 정치적 흐름으로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당파적 투쟁과 지역주의적 대립이전에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을 지키려는 노력에 힘을 합치자. 단번에 되지 않더라도 한발자국씩 나가보자.

이런 견지에서 5월 30일 열리는 <제3의 힘> 총회가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의원을 포함한 회원뿐 아니라 80년대 민주화정신에 뿌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뜻을 모으는 첫발자국이 되기를 바란다.

제대로 반성을 해야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조차 위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일은 더욱 힘차게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것일게다.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비회원도 참석하여 격려와 질책을 아낌없이 보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임채정 선배, 김근태 선배, 노무현 선배, 이우재 선배, 이부영 선배, 장기표 선배 등 많은 선배들도 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옛날 그때처럼 깡소주에 김치로 뒷풀이라도 할 수 있으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3의 힘>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도 실려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이기도 한 본인의 허락으로 동시 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3의 힘>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도 실려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이기도 한 본인의 허락으로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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