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내세우는 금기된 주장

김명철의 책 '김정일의 통일전략'을 읽고

등록 2000.06.08 04:01수정 2000.06.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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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다가왔다. 이제 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통일을 해야 할 북의 정상-김정일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아마 이 책을 처음에는 당혹감 내지, 심지어 혐오감을 가지고 대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이 책이 결코 한국이 미워서 쓴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한국이 자기 정신을 되찾고 진정한 자주민주국가가 되기를 원하는 충정에서 쓴 것이라는 걸 독자는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당혹감 내지는 혐오감. 충분히 그럴 만하다. 새빨간 표지와 군인들의 사진으로 장식된 표지는 왠지 '불온서적' 같다는 느낌을 준다. 나름대로 반북, 반공이데올로기를 벗어났다고 자부하던 나조차도, 이 책이 시사주간지에 크게 광고된 것을 보면서는 당황했다.

'이런 책도 광고까지 할 수 있구나' 라는 느낌.
'우리나라에는 출판의 자유가 있었구나'라는 어설픈 생각. 결국 이것도 레드 콤플렉스일까?

북의 지도자 김정일.
김정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저 능력도 없이 부자세습에 의한 권력자, 군사독재자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그러한 김정일을 통일된 단군 조선의 최고 1인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될지도 모른다'가 아니다. '될 가능성이 크다'도 아니다.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던 사람들을 흠칫 놀라게 할만한 대목이다. 왠지 이 책을 종이로 몇 겹 싸서 구석에 꽂아놔야만 할 듯한 기분도 든다. 이처럼 이 책은 너무도 당당하게, 당연하다는 듯 서술하고 있다. 애써 부정하려고 해보아도 그 당당함에 도리어 할말이 없어진다. 나에겐 그 당당함을 거부할 근거가 없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배운다. 그리고 언론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선전한다.
"북은 배고파 굶주려가고 있고, 남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인민들의 굶주림을 모른 척하고 군사를 키워왔으며 요즘에는 결국 그것으로도 통하지 않자 경제협력하기로 나섰다고. 이제 사회를, 경제를 개방할 거라고. 북은 소련과 중국의 덕택으로 버텨왔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틸 구석이 없다고."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이 책을 읽으며 부서져 버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제까지 자신이 북을 판단해온 것들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했던 것이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바로 가치관의 혼란이 시작되는 것.

이 책의 내용들을, 필자의 주장들을 그저 하나의 견해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필자의 주장들이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다는 데 있다. 해방 이후의 역사, 그리고 그 이후 첨예하게 대립해온 북미관계의 역사를 고찰하고,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인과성과 당위성이 돋보이는 해석을 덧붙였다는 데 있는 것이다.


또한 단지 북미관계 뿐만이 아닌, 열강들의 대립 속에서 소련과 중국의 모습들, 그리고 냉전시대 해체 이후의 동북아 정세까지의 역사를 되짚고 있다.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해방 이후의 한국 역사 또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책의 저자 김명철은 군사 전문가로 이미 많은 논문 및 책을 저술한 사람이다. 김정일도 이 사람의 그전 책을 보고는 '정확하고 재미있다'고 절찬했다고 전해진다. 알려진 군사전문가 혹은 남북관계전문가들 중 지금의 북미관계를 이토록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다고도 한다.

한번 느껴보길 권한다.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깨어지는 느낌. 그리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주장하는 '금기된' 주장.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비워볼 기회를 가져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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