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파출소에서 얻은 택시비

포돌이는 서울시민의 다정한 친구?

등록 2000.06.24 17:59수정 2000.06.2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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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여기가 어디야?'
오전부터 12시간 넘게 전세방을 구하려고 다니다가 인천 송내에서 막차를 타고 노량진에서 내려야하는 기자가 눈을 뜬 곳은 신이문역입니다.
반대편 전철은 이미 끊겼고, 수중에는 동전 몇개 뿐입니다.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제 탓이지요.
다리도 몸도 튼튼한 젊은이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집까지 걸어서라도 가면되지 했습니다.

외대 앞 휘경동을 지나, 회기동을 걷는데 너무 힘듭니다. 하루종일 걷고 헤맨 탓이겠지요.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꺾입니다.

'안되겠다. 살아야 겠다.'이런 심정이었습니다.

파출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들어 주실거야....

회기동을 지나 '포돌이는 서울시민의 다정한 친구'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보이는 한 파출소에 들어갔습니다.


'아저씨, 저~~~
음.... 저 집에 가는 길인데요,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차비를 좀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전 학생인데요, 학생증하고 신분증 맡기고 내일 갖다 드릴께요.
안될까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십니다. 답은 거절입니다.


조금은 실망을 하곤 '다른 파출소로 가면 되겠지. 여기만 파출손가?'
자위를 하며 걷기시작한 지 1시간이 되었을 무렵 경동시장 부근의 또다른 파출소를 찾았습니다.

여기서도 부탁을 들어 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집에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나와달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하시더군요. 그것이 쉬운 일이었으면 신이문역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럼 아저씨 저쪽으로 쭉 가면 성수대교인데, 그 쪽으로 가는 길에
어디께 파출소가 있는지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 쪽은 우리 관할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시민의 지팡이라는 경찰관 아저씨들이 이럴 수 있나?' 오기가 생겼습니다.
한 20여분을 걸으니 동대문경찰서 관할을 지나 성동경찰서 관할에
한 파출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은 잔돈을 털어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정말 진정한 시민의 포돌이는
없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해소해 보고자 들어선 세번째 파출소.

한 경찰관 아저씨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도 학생같은 사람을 많이 접해보았는데,
빌려주면 그것으로 끝이더라고. 보람이 있어야 도와주지?'

또다시 거절입니다.
참 난감하고 힘듭니다.

또 걷습니다.
고개를 하나 넘어서 두리번 거리니 파출소가 보입니다.
자포자기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이 어디인가 보고 싶었습니다.

칭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행당 1동 파출소]

자초지종을 듣고 근무하시던 경찰관아저씨들이 다투어 택시비를 빌려주자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이로써 3시간에 가까이 허우적거리며 걷는 고통은 끝입니다.
택시를 타고 성수대교를 건너 달리는 데 참 행복했습니다.

교대근무 탓에 다다음 날 오전.
파출소를 찾아 빌린 택시비 1만원과 조그마한 음료수 한박스를 전했습니다.
그리곤 90도로 허리를 굽혀 말했지요.
"고마웠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을 주장하며 내세우는 문구입니다.

우리들 곁에는 고맙고 자랑스러운 경찰관 아저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고, 그릇된 경험을 깨고 다르게 생각해 볼 문제도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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