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 갔다 네번 속상했던 이야기

오마이 <미국 사는 이야기> 24

등록 2000.07.10 11:42수정 2000.07.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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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놀랐다.
미국에 있는 한 아이스크림 체인점이 한국에도 이렇게 많을 줄이야.
좁은 땅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면서 미국 보다 더 많은 가게가 한국에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정말 놀랐어.


어쩌면 그렇게 길 몇 개 안 건너도 그 간판이 보이는지.
덕분에 나는 미국에서 1년 갈 것을 한국에서 1달 동안 다 갔다왔다.
그런데 얘기 좀 들어봐. 내가 한국 가 있는 동안 거기 미국 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총 다섯 번을 갔는데 그 중 네 번은 마음이 상해서 돌아섰다는 것 아니니.

-첫 번째 속상했던 일-

시부모님과 함께 신림역 근처의 그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다. 준한이가 사달라고 조르자 시아버님은 곧장 거기로 들어가신다. 뒤따라 들어가 보니 찬미와 준한이는 벌써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들고 있는데 준한이가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그대로 "툭-"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는 거야.

작은 콘에 부실하게 얹혀졌던 둥그런 아이스크림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냥 떨어진 거지. 나는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냅킨으로 처리해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 콘을 들고 가 "아이스크림이 그냥 떨어져 버렸어요. 다시 담아 주실래요?"하고 말했다.

그런데 거기 주인인지 점원인지 서빙을 하던 한 아가씨가 이러는 거야.
"그렇게는 안 되는데요." 그냥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네.
"왜 안 되는데요? 한입도 못 먹었는데." 내가 받아서 말했지.
"그래도 안됩니다. 다시 아이스크림 값을 내셔야 합니다."


시부모님 계시고 해서 더 싸울 형편이 아니었다. 떫은 감 씹은 얼굴로 결국 다시 계산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담아 준한이 손에 들려주었지만 나와서도 내내 마음이 상했다. 미국이었으면 자기 잘못이 아니더라도 "I'm sorry..."하면서 그 자리에서 다시 담아 주었을 텐데 도대체 여기는 왜 안 된다는 걸까?

-두 번째 속상했던 일-


수원 친구 집에서 하루를 묶었는데 친구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못 사준 게 미안해서 점심을 먹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 집 네 식구와 그 집 네 식구 아이스크림을 샀는데 가격이 9천원이 넘었다.

그 순간에 함께 있지 않았던 그 집 큰 딸 몫을 사면서 "이건 집으로 가지고 가야 하니 뚜껑을 좀 덮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여기도 한마디로 안 된단다.
나는 또 물었지.

"왜 안 되는데요?"라고.
"이건 뚜껑 없이 나오는 컵이기 때문에 뚜껑을 드릴 수 없습니다."
진열대 뒤로 음료수 컵과 뚜껑, 포장용 컵과 뚜껑들이 보였다.
"저기 뚜껑이 많이 있는데 하나만 좀 덮어 주시면 안되나요?"
"안돼요. 이건 컵과 뚜껑이 개수가 맞추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뚜껑만 뺄 수가 없습니다."

진열대 앞에 큰 싸이즈 포장용 컵을 쌓아놓은 위로 모빌로 달아놓은 사인이 보였다. 패밀리 사이즈 "9천원"(확실히 생각은 안 난다. 그때 기록해 두지 않아서. 하여간 내가 지불한 액수보다는 작았다)
"여기도 9천원 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면 이 용기에 포장해 준다고 되어 있는데 제가 산 아이스크림 값이 9천원이 넘잖아요. 여기라도 좀 담아주면 안됩니까. 한참을 운전하고 가야하는데."
"그렇게는 안돼요."
아- 그 불친절함이라니.
여기서는? 당연히 포장해주지!

-세번째 속상했던 일-

중앙대 캠퍼스에서 보고 싶던 동기들 가족과 모여 학교 앞 자주 가던 안동장에 가서 저녁을 먹고 갹출한 돈이 남았다고 바로 앞에 있는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우르르 아이들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려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출입문에 보니 9천 9백원 이상 사면 사은품을 준다고 써 있다.
친구 하나가 "어? 사은품 안 받았네?"한다. 다시 계산대로 돌아가 "우리 9천 9백원 넘었는데 왜 사은품 안 주세요? 저기 준다고 써 있는데"라고 말하니까 그때서야 야외용 깔개를 하나 준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또 다른 친구 하나는 "하여간, 꼭 얘길 해야 준다니까"라고 투덜대고. 그 밤에 다시 캠퍼스로 돌아가 그걸 깔고 둘러앉아 참 정겨운 밤을 보냈지만 "기념으로 너희가 가져가라"며 손에 들려준 그 깔개를 펼 때마다 썩 좋은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애.

-네번째 속상했던 일-

미국에 돌아오기 바로 전 날 시동생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보낼 적당한 곳을 찾다가 그날 따라 유난히 뜨거운 태양볕 때문에 야외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배을선 기자가 친절하게 소개해준 세밀화가 이태수 원화 전시회 "심심해서 그랬어" 그 마지막날 인형극 공연을 보러가기로 했다.

현대백화점 신촌점 10층 현대아트갤러리에서 전쟁 같은 공연이 끝나고(왜 전쟁 같았는지는 다음에 얘기해 줄께) 땀에 젖어 나온 아이들은 입구에 있는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 또 줄줄이 줄을 선다. 우리 아이들도 그대로 지나칠 리가 없지. 또 사달라고 조른다. 한국 와서 아이들에게 정말 큰 인심쓰고 있지 내가.

정말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고 나오는데,
'어? 영수증을 안주네?'
복작거리는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로 "영수증 안 주셨는데요?" 하고 내가 말하니까 그때서야 한번 흘깃 보더니 말 한마디 없이 계산기에서 영수증을 찾아 끊어준다.

동서 얘기를 빌면 영수증을 모으면 주차비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이 백화점 내의 상점에서는(한 미국 체인 피자 상점에서도 그랬다) 자동으로 영수증을 챙겨주지 않는 걸까?

여기서는?
그야 물론 영수증으로 주차비를 대신하지 않아도 영수증은 자동으로 따라오지.

미국에 비싼 로열티 지불하며 장사를 하는 그 아이스크림 가게들을 지나며 고객 서비스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참 속상했다. 아이들에게 친절한 아이스크림을 사 줄 수 있었다면 좀 덜 속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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