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박수 칠 때 떠나라"

20여년간 유지해 온 '전원일기식 이데올로기'

등록 2000.07.24 03:42수정 2000.07.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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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그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가식과 위선을 시청자들 앞에 폭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드라마 평론가의 입장에서, 난적 중의 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원일기'이다.

'농촌으로의 향수'와 '따뜻한 공동체생활', '대가족제도에 대한 향수' 등으로 무장한 전원일기의 위상은 가히 평론가들을 기죽일 만하다. 이 드라마를 혹평하려는 것이 혹시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닐까 하는 자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게 하는 그 힘 또한, 전원일기의 위력일 것이다.

고민 끝에 '이 드라마에 대한 혹평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될 수 없다!' 하고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은 바로 '전원일기 이데올로기'의 실체였다.

전원일기는 지난 20여년을 방송해 오면서, 일정한 구조를 형성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원일기 이데올로기'로 불리는 이 구조는 '어른으로서의 김회장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어떤 갈등이 있더라도 양촌리의 모습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는 것.

이 드라마는 지역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 공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족·친척·이웃 간의 사소한 일이나 질투 오해 등에 비롯된 갈등을 드라마의 중심 이슈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가부장권의 강화, 대가족주의와 연장자에 대한 예우, 가문과 가정에 대한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강조된다는 의견이 그 지적의 핵심이다.

물론 전통적인 가치관의 강조가 단순히 이 드라마의 문제점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전통적인 가치관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의 삶이 '문제해결 능력이 없이 무기력하거나 자식, 손자, 손녀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타인 특히 남성에 의존적이며, 주체적이기보다는 주책스런 모습을 띠도록 만드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점이다.

더구나, 여성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거역하면 처벌받고, 순응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철없는 동서를 아량으로 배려해주는 큰 동서'의 모습으로 포장하는 솜씨는 전원일기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역량이라 할 수도 있음직하다.


이 드라마의 문제는 단순히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강화에만 있지 않다. 이 드라마는 "'김회장댁'과 '일용네 등 나머지 마을사람들'의 대립구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아오기도 했다. 물론 이때도 항상 정의의 편은 김회장댁.

언제 어떤 순간에도 옳은 대답만을 내놓고, 정의의 편에만 서는 한 집안의 존재. 그 집안에 대해 어떤 노골적인 비난과 반대도 허용되지 않는 공동체적 분위기. 결과적으로 은연중에 '절대적 성역'을 만들어 놓은 이 드라마는 그 '성역'을 언제까지 지속시킬 것인가.


수 년 전 유행하던 '최불암 시리즈'는 전원일기가 억지로 떠받치고 있던 가부장적 권위를 무력화시키려 했던, 하나의 사회적 시도였다.

그후, 매스컴은 그와 같은 시도를 최불암이나 전원일기의 인기 결과로 포장해 버림으로써 엉뚱하고도 세련되게(?) "전원일기"를 보호해 왔다.

'최불암 시리즈'를 유행시키면서 말하려고 했던, 대중들 내면의 목소리를 언제까지나 전원일기가 외면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볼 일이다.

전원일기가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후, 황폐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탄생한 '국민정서 순화 드라마'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없는 것 같다. 그 첫회 때의 부제는 "박수칠 때, 떠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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