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패배했다, 그러나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평택에서 날라온 에바다 옥중 서신 2

등록 2000.07.26 02:52수정 2000.07.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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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오후 4시 우리는 서울대에 모여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단위 대표자회를 하고 있었다. 바로 아래층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하는 인권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회의 분위기는 언뜻 패배감에 휩싸여 있었고 모두가 혼란스러웠다.

4년간의 우리 대학생들의 투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 말인가? 우리의 운동의 의미와 원칙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는가? 투쟁은 우리가 했는데 왜 어른들은 협상만을 하려고 할까?

우리의 침묵은 함께한 기자의 마음 역시 미여지게 만들었다. 그 침묵들 속으로 이제 조기에 사건을 종결지을려는 평택시의 서로간의 고소고발 합의 제안 소식이 전달되었고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 역시 재단측의 난동과 협박만이 난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우리는 그 소식들의 침묵속에 울고 있었다. 아니 처참하게 께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왜 전학협이나 한총련처럼 조직과 전략과 전술이 없는 것일까? 그 많은 사회복지학과,재활학과학생들, 수화,봉사동아리들, 수없이 많은 장애인 단체들은 어디로 갔나? 우리나라 장애인 수가 400만이라는데 그들은 다 어디로 숨었나? 기자의 뇌리속은 온통 쓰라린 헝크러짐 뿐이다.

우리는 원칙과 반성 전략과 노력이라는 명제속에 정말 치열하게 침묵을 논했다. 그리고 옥중에 있는 우리 대표가 우리에게 쓴 편지를 모두가 읽었다.

<우리는 패배했다, 그러나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에바다는 졌습니다. 우리가 패배한 것입니다. 통곡할 일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습니다. 지난 4년 동안의 싸움은 모두 물거품일 수밖에 없었나요?


우리가 기대해 마지 않았던 장애인 대통령 김대중도 복지 행정 전문가인 차흥봉 역시 에바다 비리 주범 김선기 평택시장과 모두 매한가지였습니다. 아니, 저도 똑같습니다.
......

우리는 이제 엄청난 절망 앞에 모두 좌절해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있었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힘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체제에 그냥 우리가 순응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그들 속에 그저 몸뚱아리 하나만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평택에서 있었던 우리들의 싸움은 멋지게, 보가좋게 패배한 것입니다. 시청 앞의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의 몸둥아리는 짓밟히고 뒹굴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힘없이 스러진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은 우리를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에 있었던 반면 우리는 그들이 아직까지 누군지조차 모른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모든 면에서 우리는 열세였던 셈입니다.

저는 요즘 여기 평택 구치소에서 여동생이 넣어준 한국 근대사를 다룬 '아리랑'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왜 빼앗기게 되었는지 이 회백색 독방에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강점당한 이유 역시, 그들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모르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쉽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에바다는 너무나 복잡하지만 또한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에바다를 여기서 다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돌아 보건대 우리는 단지 장애인 시설 비리를 갖고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 전체 기득권 세력과 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당연히 패배했고 앞으로도 우리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떳떳이 패배를 시인하고 반성하며 절치부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 편이라 생각했던 장애인 단체와 장애 언론도 우리를 외면하여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들은 앞으로도 우리를 철저히 외면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저 이 땅에 산다는 것이 수치스럽기까지 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에바다 투쟁은 패배하였지만 에바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결국 수많은 저항을 통해 다시금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에바다 투쟁의 패배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역사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에바다의 끝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뽑아준 의장으로서의 간절한 염원입니다. 에바다 인권 캠프를 무리해서라도 준비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필수이고 의무입니다.

이 에바다 싸움의 승패는 결국 그들이 얼마나 강하냐가 아니라 우리의 염원과 의지가 어디까지냐하는 것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지만 우리 모두가 합방에 만족하고 독립을 염원하지 않았다면 어찌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에바다 싸움의 끝은 이 땅에서 에바다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두 없어질 때 끝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캠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전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에바다 패배의 원인과 한계를 명확히 분석해 내어야만 합니다. 단지 몇 사람들의 인식이 아니라 에바다의 투쟁의 패배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각자 우리 자신의 몫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마당이 필요합니다. 에바다 패배의 한과 잘못을 함께 풀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거기서 멋드러지게 한풀이를 하고 나서 우리는 보다 더 넓은 지평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멀리뛰기 위해서 움츠려야 하겠습니다.

에바다 복지회는 결코 어느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어떤 이들은 독립군으로, 어떤 이들은 교육으로, 또 어떤 이들은 자금으로 후원하고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뜻을 모은 싸움이 있었기에 결국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에바다를 명확히 보아야 합니다. 결코 에바다는 쉬운 싸움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진정코 에바다가 완전히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에바다 싸움은 이제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계속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단지 한 순간의 통곡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을 통해서, 이 땅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와 사랑의 거대한 흐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포기한다면, 결국 제2, 제3의 에바다가 계속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내버려 두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에바다 투쟁의 패배는 이제 에바다를 위해 싸웠던 그 모든 사람들이 재산이고 가능성입니다. 다시 한번 큰 줄기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그 시간이 아무리 멀다 하여도 이제 그 물꼬를 트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은 없어져야 하며, 이제 그 해결의 열쇠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에바다 동지 여러분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늘 기도하고 있다는 것 꼭 기억해 주십시오.

2000년 7월 20일 동엽

덧붙이는 글 | 오는 8월 17일부터 있을 에바다 인권캠프는 시설의 벽을 허물고 희망의 햇살을 장애인에게라는 모토를 걸고 에바다 4년간의 투쟁을 평가 반성하고 나아가 장애인 시설의 민주화, 장애인권을 위한 자리매김을 위한 장으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단식투쟁과 에바다 대표의 구속으로 기획 추진이 무산될 뻔 했으나 옥중에 있는 에바다 의장의 간곡한 호소호 힘차게 진행하기로 에바다 대학생연대화의는 결의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호소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오는 8월 17일부터 있을 에바다 인권캠프는 시설의 벽을 허물고 희망의 햇살을 장애인에게라는 모토를 걸고 에바다 4년간의 투쟁을 평가 반성하고 나아가 장애인 시설의 민주화, 장애인권을 위한 자리매김을 위한 장으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단식투쟁과 에바다 대표의 구속으로 기획 추진이 무산될 뻔 했으나 옥중에 있는 에바다 의장의 간곡한 호소호 힘차게 진행하기로 에바다 대학생연대화의는 결의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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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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