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전경이 보내는 편지 2

사랑하는 에바다 동지들에게

등록 2000.08.06 22:09수정 2000.08.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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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한때 '에바다'에서 활동하다가 군에 입대해 지금은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는 한 청년이 '에바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역시 '에바다'일을 하고 있는 김형수 기자가 옮겨 실은 것입니다.)


보고픈 에바다 동지들에게

잘들 지내나요? 비가 억수로 내리는 월요일입니다.
오늘 집회가 잡혀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되는지, 또 천막 안에 계신 분들은 감기 안 걸리셨는지. 아마 제가 여기 군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곳이 제 집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여기에서는 비가 오는 탓(?)에 훈련이 취소됐답니다. 새로운 보직이 훈련 때면 사정이 딴판이 된답니다.

방패, 봉, 진압 장갑, 화이바, 진압복.
이런 장비들을 차에서 내리고, 나눠주고, 다시 싣고, 닦고 하는. 말 그대로 삽질의 연속이지요.(훈련 준비한 게 억울하다!) 어쨌든 훈련 있는 날이나 출동 있는 날에는 밥 한끼 굶을 각오는 기꺼이 해야 되죠.(밥대신 450원 짜리 사발면 부셔먹는답니다.) 대신에 자유시간이 꽤 보장되죠. 그리고 외박 때 1박 추가도 있구요(4박 5일). 외박. 한 10월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제, 또 자랑스러운 우리 부대원 1명이 배 밖으로 간이 삐져나온 짓을 했으니. 또, 탈영했답니다. 상경 말호봉에 탈영이라. 탈영하는 사람들, 심정이야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군요. 아직도 잘(?) 맞는 법을 몰라서 그랬던 같은데. '잘 맞는 법이란,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맞는다 & 피하면 더 맞는다'입니다. 우리 군대 간 에바다군경 회원들이야 별 걱정 안해도 되겠지요?

어쨌든 다섯 달 연속 탈영사건으로 인해서 중대장이 엄청 화를 내셔서 외박을 또 조정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외박중지조치!) 한 11월 중에는 외박을 나갈 수 있겠죠 뭐. 외박이 밀려도 크게 걱정할 게 없는 건 병가가 있기 때문일지도.

외박 한번 밀리면 병가가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진답니다. 병명은 제각각이지만 이유는 한결같이 '축구하다가 다침'이 되죠. 얼마 전 진압하다가 고참 한 명하고 동기 한 명이 다쳤죠. 날아온 돌에 턱이 돌아가면서 신경이 많이 훼손됐다네요. 13바늘 꼬매고 프랑켄슈타인이 돼서 10일간의 병가를 받고 나갔죠. 암튼 28일날 또 매향리 간다더군요.

모두들 매향리에 용무 있으신 분들은 조심하세요. 어쩔 수 없는 제로섬 게임에 빠져들어야 하는 제 자신의 모습에 가끔은 멍하네요. 에바다는 방학동안에 뭘 하나요? 또 어떤 싸움을 준비할는지. 힘들어 할 에바다 동지들, 여러분들께 힘내라는 말조차 왜 이렇게 하기가 힘든지. 어쨌든 긴긴 장마와 미친 더위를 잘 견디어 내시길.

맞다! 그리고 올해 교사시험을 치르는 3분(?) 누님들도 열심히 공부하시구요. 그리고 집행 사무국을 대여(?)해주신 게르니카 식구들도요. 저도 목에서 쉰목소리가 나도록 진압해야지요. 어쩔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그리고 나를 zero-sum game 원칙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뚫리면 옆에 있는 사람이 다친다'는 명제인 것 같아요. 내겐 전경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이니까.

지난번의 그 애매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환해보려고 삭발을 했답니다. 깎고 나니 정말 아무튼 기분전환 거리로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하군요. 늘상 몸과 마음이 번갈아가면서 힘을 줬는데 오늘은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네요. 괜시리 짜증만 나고 어제 대전에 혼잡경비 나가서 뻗치기로 8시간동안 아침, 점심 굶고 있는데 앞에서 공익근무요원 2명이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며 짝다리 선 모습이 보였답니다.

글쎄 많이 단순해져서 그런지, 아님 뭐 그리 열받는지 가끔은 공익이나 의경만 보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모습. 싫다. 오늘도 그 생각만 하면 짜증이 엄청 나네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 해서 왔더니 하는 일은 고작.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면.
모르겠네요. 작년 동연에서 그랬듯이 난 얼마나 새로운 벽들을 운동으로 풀어헤칠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미친듯이 달려들 수 있을지.

미안해요. 오랜만에 보내는 편지인데 힘내라는 말도 못해주고 예전엔 '힘내자'였는데 이제는 '힘내라'가 됐네요. 그래요, 모두 힘내시구요. 11월달에 보도록 하죠! 에바다 농성 4주년 때에나 볼 수 있으려나?

2000.6.26

덧붙이는 글 | 에.바.다. 
이 세 글자가 날 놓아주지 않는 것은 삭막한 이 세상에서 나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는.     

이 곳에서 무슨 말을 적든지 말 뿐이죠. 이 곳에서의 남은 2년이 끝나고 나면 으라차차!!! 몸으로 뛰자!!!

장/애/인/권/쟁/취/투/쟁/

덧붙이는 글 에.바.다. 
이 세 글자가 날 놓아주지 않는 것은 삭막한 이 세상에서 나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는.     

이 곳에서 무슨 말을 적든지 말 뿐이죠. 이 곳에서의 남은 2년이 끝나고 나면 으라차차!!! 몸으로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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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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