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매콤한 떡볶이 냄새에 끌려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군것질을 했던 기억들을 모두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해방감에 군것질을 할 때 느꼈던 그 풍족감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들 식품은 위생검열 한 번 받지 않는 공식적인 불량식품이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아닌가. 참 많이도 먹었다.
내가 아는 누님 한 분은 떡볶이를 너무나 좋아해 밥 대신 그것만 먹다가 영양 실조가 되어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참 신기한 건 그 누님같이 삼시세끼 편식만 하지 않으면 이들 불량식품을 아무리 먹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탈 한번 나지 않고 즐거운 포만감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떡볶이를 먹고 식중독이 된 사람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한국인들의 위장은 철벽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식품위생상태를 점검하는 사람들은 기겁을 할지는 몰라도 먹을 때는 너무나 즐거우니까.
나는 과거 고등학교 시절 길거리를 거닐며 없는 돈을 털어 먹었던 그 떡볶이 맛을 아직 잊지 못한다. 누구나 노점에 대한 추억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추억을 주던 노점상이 특히 근래 크게 변하고 있다. IMF이후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급격히 노점상의 숫자가 늘어났고 그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진 탓도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개발되고 있고 그 서비스도 뜨거운 날에도 차가운 물을 제공해주는 등 점차 좋아지고 있다.
서울시내에서 노점상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는 홍제동 유진상가, 서대문 영천시장, 동숭동 대학로, 중랑구와 노원구의 아파트단지, 종로구 종각에서부터 동대문에 이르는 대로변, 이화여대 앞등의 대학가 등이 꼽힌다.
그러나 근래엔 젊은 유동층이 많은 대학가들 뿐만 아니라 집 주위에 있는 일반 가게들이나 집조차도 부업으로 옆에 천막을 치고 이러한 장사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노점상 증가추세에 몇몇 구청 등에서는 '영세노점상 전업자금 확보 및 융자에 따른 협약서'를 통해 이들 노점상들에게 자금융자를 해줌으로써 합법적인 사업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98년 11월 말까지의 통계결과 서울시에만 1만3천5백51개의 노점상이 있다고 한다. 이는 공식적인 집계에만 의존한 것으로 실제 집계가 되지 않는 노점상들까지 합하면 두배는 더 있을 거라고 한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지금쯤은 3~4만에 가까울 것이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는 이른바 '생계형 노점상'이라는 기준을 정해 허용을 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형 노점상'등 체인점 형태로 이루어지는 노점상에 대해서는 오히려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왜 이들이 이토록 인기를 모으고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아보자면 노점창업은 유지비와 임대료가 없고 또한 최소의 창업자금, 쉬운 품목전환, 빠른 현금회전, 기동성, 무(無)세금 등 기존의 가게가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종류를 크게 구분하면 차량형, 리어카형, 좌판형 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가장 간단한 형태의 붕어빵 리어카등의 경우 리어카임대료, 틀기계값, 부대비용으로 60~70만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간단한 조그만 중고트럭등을 장만하면 4백~5백만원정도면 충분히 많은 종류의 음식을 갖춘 노점상 주인이 될 수 있다. 물론 뽑기 장사등의 경우에는 3~4만원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매출은 최하 기준인 5만원 정도서부터 많으면 1백여만원에 달하고 수익률도 40%~70%에 육박한다. 마진은 계절 구분없이 팔수 있는 닭꼬치의 경우 50%선, 오뎅은 80%, 호떡은 3개에 1천원을 받을 경우 60% 선, 붕어빵은 70% 선 정도라고 한다. 크게 노점을 하는 경우 하루에 순익만 50만원 이상 현금으로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마진율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미빛 노점상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이 처한 어려움은 좋은 목잡기부터 시작해 어깨들의 자릿세 위협, 불법 노점상에 대한 단속, 당일 재고 처리, 때에 맞는 사업전환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위협인 단속의 경우 경찰청과 구청이 하는 단속에 걸리면 ‘도로무단점유’로 최고 3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도로교통법’에 저촉되면 3만~5만원 정도의 과태료를 물리거나 즉결심판에 넘어가 구류 또는 벌금에 처해지기도 한다. 또한 음식의 재료로 쓰일 각종 양념을 제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노점상들은 어느 사업보다도 소자본으로 현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이점을 쉽게 포기할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어려운 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돈을 벌고자 애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철과 시간대별로 장사아이템이 다르다는 점이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겨울엔 일반적으로 따뜻함이 느껴질 수 있는 붕어빵이나 근래 인기를 모았던 계란빵, 그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군고구마등이 잘 팔린다.
여름인 지금에 와서는 닭꼬치류가 인기이다. 거리에 나가보면 대다수의 노점상에서 팔고 있다. 또한 그다지 뜨겁지 않은 핫도그와 햄, 튀김, 파인애틀 조각 등이 주 아이템이 되고 있다. 사시사철 인기인 식품은 어느 계절에도 볼 수 있는 떡볶이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또한 시간대별로 보자면 아침 출근시간에는 식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계란토스트 및 햄버거가 인기이다.
또한 이들도 유행을 탄다.
과거 가난하던 시절에는 설탕으로 만든 뽑기와 흑설탕등이 주재료였던 호떡등이 인기였지만 그 이후 붕어빵을 거쳐 2년전부터 유행되기 시작한 계란빵과 IMF를 반영하듯 커다란 덩치로 인기를 모은 와플, 현재는 증가된 소득과 다국화추세를 반영하듯 과거로서는 비싼 수준인 닭꼬치와 파인애플, 초콜릿이 발라진 바나나 스틱등이 인기이다.
그리고 그 기본상품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의 상품들이 근래에는 서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겨울에 붕어빵의 경우 국화빵, 잉어빵, 요새는 용가리빵 까지 나왔고 계란빵의 경우에도 일반계란빵에서 야채계란빵, 영양계란빵등의 종류가 나왔다. 봄등에는 도너츠등의 판매도 이루어졌었는데 특히 팥도너츠등을 비롯해 던킨 스타일의 도너츠가 인기를 모았다.
또한 여름을 맞아 나온 품목들을 종각에서 종로까지의 노점들을 걸어가며 조사해본 결과 오뎅은 과거에 나오던 작은 형태의 오뎅에서 500원에서 1000원대의 오뎅으로 대형화되는 추세이고, 햄꼬치는 쫀득쫀득한 핫바부터 시작해 맛살과 오뎅을 결합한 꼬치 등으로 발전하고 있고, 핫도그는 과거 700원대의 핫도그에서 1000원대의 대형핫도그 및 감자튀김을 붙인 감자핫도그 등으로 차별화되고 있다.
또한 김밥말이의 경우 700원대의 계란김밥말이들이 등장했으며 떡볶이의 경우 순대를 떡볶이 양념장에 넣는 형태가 인기이다. 튀김의 종류에는 오징어튀김, 야채튀김, 감자튀김, 맛살튀김, 고추튀김 등의 종류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3개에 1000원이다. 닭꼬치의 경우도 후라이드 닭꼬치, 양념 닭꼬치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좀 규모가 큰 가게에서는 슬러시를 비롯해 바나나 쥬스, 키위요구르트, 토마토 쥬스등의 생과일 쥬스 등도 함께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과일 조각의 경우 파인애플 조각과 함께 메론 조각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외에도 골뱅이, 번데기 등을 팔고 있는 곳도 있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노점에서 휴지등의 비치와 함께 차가운 물등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가게 등 치열해진 경쟁에 따라 다른 가게와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의 경우 사실 지하경제의 발달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당히 고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상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는 근처의 가게들과 충돌을 빚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이러한 경제활동 자체가 가리워짐으로서 탈루되는 세금들의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또한 위생등의 문제도 있다.
<노점상의 문제점>
① 수입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 과세 형평성에 위반이 된다.
② 무단 도로 점유로 인하여 보행 및 차량운행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
③ 오물 투기로 인하여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④ 도시 미관도 좋지 않다.
⑤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은 비위생적으로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⑥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은 대다수가 값싸기 때문에 많은 시민이 이용을 하고 주변의 떳떳하게 세금을 내고 영업을 하는 상업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중앙일보 1999. 8. 12. 木 발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이 결코 처음부터 노점을 시작한 것도 아닐 것이요, 실직이후 가난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맨손뿐인 상황에서, 노점은 사회안전망이 빈약한 우리 나라에서 비공식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노점은 "골목의 희망"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실제 노점상중에선 과거 기업을 경영하거나 엘리트로서 살아왔던 이들도 상당히 많다. 노점이 그런 이들이 다시 희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면 충분히 노점은 남아있을 가치가 있다.
항상 길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어김없이 밤12시까지 불빛을 밝히며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의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맛있게 먹으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을 본다. 그들 중에선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숨어있고 희망을 꽃피우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길거리를 걷다가 오늘 한번쯤 노점에서 떡볶이 한접시를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여러 살아가는 이야기를 정겹게 나눠보면 어떨까. 오늘 찌는 이 여름이 그다지 무덥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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