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와서

우리땅 더욱 사랑하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등록 2000.08.24 12:27수정 2000.08.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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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CO(포스코)의 후원을 받은 청년세계탐구단의 3차에 걸친 심사에서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과 (사)다움연구소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ARTFORTE팀이 최고의 성적을 거두어 유럽으로 떠난 것은 지난 7월 25일이었습니다. 한겨레신문사 등에서 함께한 사람들로 인해 우리팀의 인원은 무려 12명, 12명의 인원으로 우리는 20일동안 유럽 여러나라들의 문화정책을 살펴보고 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12명의 사람들이 본 12가지의 유럽을 어떻게 기사 하나에 다 담을 수 있을까요? 그저 독백같은 이야기 몇으로 말과 말 사이에 숨어버린 유럽의 기억을 성기게 끄집어내 보기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너른 양해를 구하며 무엇보다도 외국에 나갔다오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거나 '우리는 너무 좁은 나라에서 아둥바둥 살고 있다'거나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유럽을 다녀와 보셔서 아시겠지만 유럽 어느 곳을 가든지 그곳의 도시는 대한민국의 어느 시골보다도 깨끗하지 않았고 우리처럼 질서를 잘 지키며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에선 제대로 영어를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해 헤매야 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바가지를 뒤집어 쓴 줄도 모르고 부모님 선물을 사야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게르만족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고 네덜란드에선 가는 곳마다 따라붙는 마약중독자들의 구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영국의 맛없고 비싼 식사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여름의 프랑스에는 핫팬츠와 긴 코트가 공존하는 자유가 있었고 스위스에는 자신들의 모든 불리함을 인간의 자주적 의지로 극복해내는 인간승리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퇴락해버린 제국의 영화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이, 독일에는 무뚝뚝한 게르만의 뚝심이 있었고 네덜란드에는 절제와 배려로 그들의 자유를 유지하는 힘이 있었으며 영국에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대영제국의 매운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에펠탑도 대영제국박물관도 아니었습니다. 비록 저만의 느낌이었을지언정 놀라웠던 것은 정치가도 철학자도 아닌 예술가들이 그려져 있던 프랑스의 지폐와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렸던 천년쯤 묵은 이태리 아레나극장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돌아오기 위해 떠난 여행, 자꾸 우리나라의 팍팍한 일상과 저급한 문화예술환경이 자꾸만 모래바람처럼 서걱서걱 가슴을 덮쳐오더군요.

아직도 예술가를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 그리고 경제개발 구호 아래 온갖 문화유산들을 과감하게 부숴버리는 나라, 그리고 200년 이상 엄청난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공연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는 나라에서 스물아홉을 살던 저의 눈에 어린왕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프랑스의 지폐는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그리고 1000년쯤된 극장에 200년쯤 된 오페라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이태리 사람들(독일에서 보러온 아줌마 군단도 있었음)의 모습은 또 얼마나 부럽던지요!


김훈의 말은 아닐지라도 풍경은 상처로부터 생기고 또 다시 상처를 낳습니다. 그런 까닭에 20일간의 유럽여행은 민들레 꽃씨처럼 무수한 꿈을 가슴에 심었지만 그 모든 꿈에 앞서 저는 제가 지금 발딛고 선 이땅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기로 합니다.

그것은 유럽에 대한 부러움이나 우리 땅에 대한 열등감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차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나라의 모순을 유럽의 문화와 예술이 해결해 주지 못하며 그저 이렇게 속도에 밀려 쉼없이 돌아가는 우리나라에 딴지를 걸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예술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여백을 문화로 채우는 여유가 가득한 세상과 200년쯤 지나도 변함없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 하나쯤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에 꼬옥 품고 돌아온 20일간의 유럽여행, 그 다짐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이 땅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더 치열하게 민족예술의 맑은 물을 찾아갈 수밖에요.

덧붙이는 글 |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꼭 우리 세상 밖으로 나가보세요. 왜냐구요? 나가보시면 알게 되실 걸요~

덧붙이는 글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꼭 우리 세상 밖으로 나가보세요. 왜냐구요? 나가보시면 알게 되실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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