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 "만약 합격하게 되면 언제부터 근무하게 되나요?"
회사 : "아마 10월 중순부터 근무하게 될 거예요."
학생 : "그러면 수업을 들을 수가 없는데요?"
회사 : "뭐, 4학년수업은 안 들어도 되잖아요."
한 학생이 취업설명회에 가서 겪은 한토막의 일화다.
대부분의 전국대학교 4학년생의 경우 보통 4학년2학기 수업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예사이고 시험은 레포트로 대체하며 교수들은 출석체크를 하지 않는다.
12월이 다가올수록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몇 명만이 수업을 받고 있는 강의실이 황량해 보일 뿐이다.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기업들의 입도선매식 인재 확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IMF사태 이전엔 기업들이 학기 중 학생들을 모집하기는 하였으나 학기 중에 출근을 요구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IMF사태 이후 기업들이 뽑는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선발된 학생들의 타기업으로의 이탈을 두려워한 나머지 합격시키자마자 그 기업에서의 연수와 출근을 강요하곤 한다.
기자의 학교동기들도 대부분 10월달에서 11월달 이후로는 수업을 대다수가 듣지 못하였다. 또한 처음엔 중소규모의 기업들이 실시하던 이러한 관행은 IMF사태 2년이 넘어서 취업난이 풀리는 지금에 와서 오히려 광범위하게 펴져 대그룹 계열사마저도 일반화된 행태로 고착화되었다.
이에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학교의 수업에는 나갈 수 없게 되고 교수들은 취업이 어려운 상태에서 그나마 취업이 된 학생들을 매몰차게 출석미달이나 미시험 등의 이유로 F를 줄 수도 없어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업이 될 리는 만무하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입사증명서를 가지고 오면 출석을 인정하고 있고 어떤 경우엔 4학년 2학기 전공수업이 10월까지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배우지도 않은 과목에 대한 시험을 학생들이 회사근무 중 양복을 입고 나와 단지 시험만 치고 학점을 받는 것이 당연시 된다.
논문을 써야 하는데 회사에 출근 도중이라 연구할 시간이 없어서 결국 짜집기나 베껴 통과하는가 하면 또한 간혹 미출석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교수의 F처리로 졸업하지 못해 취업이 취소되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갈등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 현재 대학사회의 현실이다.
일례로 H대학교의 한 학생은 정말 듣고 싶었던 과목을 레포트가 매일 있고 출석을 꼬박꼬박해야 한다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그 과목을 듣다간 도저히 회사에 출근을 할 수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K대학교의 한 학생은 취업 이후 출석하지 않고 시험만 치루었다가 출석 미달로 F처리가 되어 취업이 취소되어 교수님을 찾아갔다가 교수가 출국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제전화를 통해 겨우 찾아 F를 D로 변경시켜 졸업한 경우도 있다.
게다가 우등생이었던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해 2점대의 학점을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논문 등은 대다수가 1주일 동안 짜집기하거나 다른 학교 석사논문들을 파일째로 받아 제출하기도 한다. 어떤 학생들은 마지막 학기에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서 듣지 않아도 될 계절학기를 이중적등록금 부담을 해가며 수강하여 4학년 이수학점을 최소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배우지 않은 과목을 시험치고 학점을 받는다는 것은 학점이 수업에서의 충실도와 학문의 성취도를 반영한다고 보았을 때 대학교육의 목적에 완전히 모순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논문의 짜집기도 학생들이 배운 것을 평가한다는 목적을 생각할 때 학생들의 양심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학생들의 책임만으로 돌리기엔 그들이 처해 있는 입장이 너무나 어렵다. 문제는 아예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한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학생이 아닌 기업들이고 학생들은 그들의 명줄이 이에 달려 있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IMF 이후 아무리 취업시장이 풀렸어도 그다지 시장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을 받겠다며 출근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배짱이 좋은 사람이거나 배부른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대학 졸업반의 수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체의 선발관행을 바꾸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그 회사에 먼저 출근하기를 강요한다 해서 그 회사의 매출이 오르는 것도 아니요, 그 학생이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경쟁의식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면 이는 큰 불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들은 다른 회사에 앞선 당장의 인재확보와 편의라는 기업이기적인 측면을 떠나 교육권보호라는 사회적 의무 측면에서 여름방학기간에 학생들을 선발하고 연수를 시키는 방법과 선발을 일반학기에 할 경우 연수기간을 방학기간에 실시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학생들과 대학교의 수업권을 가능한 한 존중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대학의 파행적인 교육을 막기 위해 관계당국은 기업들에 대한 행정지도 등을 비롯한 적극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단지 대학을 학문을 위한 장소가 아닌 취업을 위한 하나의 관문 정도로만 인식하는 사회풍조 또한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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