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 씨의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심사 대상 거부, 지식인 150여 명의 <조선일보> 기고 거부 선언, 범시민단체 <조선일보> 대책위원회(가칭) 구성 등으로 일각에 머물던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이 사회적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제1회 고교생 논리-논술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 고등학생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12일, 서울대학교와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고교생 논리-논술 경시대회'가 전국 고등학생 1609명이 응시한 가운데 성황리에 치러졌다.
동상 이상 수상자에게는 '고교장 추천 입학 전형'에서 가산점이 주어지며, 가작 수상자 100명에게도 '논술 우수작 인증'이 행해지는 등, 대학 진학에 상당한 특전이 따른 이 대회에 학생과 일선 고교 관계자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서울대 철학사상 연구소'는, 종전 서울대 논술시험이 2시간 혹은 2시간 30분의 제한 시간에 1600자 정도의 글을 쓰게 한 것과 달리, 3시간 30분 안에 3000자의 답안을 작성하게 함으로, 명실공히 논리적 사고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또한 공동 주최쪽인 조선일보사 역시 사고와 책임 교수와의 인터뷰 등으로 자사가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를 널리 홍보해 왔다.
그런데, 정작 수상자들(대상 1명, 금상 3명, 은상 5명, 동상 15명, 장려상 30명)에 대한 시상식이 8월 23일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거행되었을 때,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장을 비롯한 관계 교수들, 후원사인 교육미디어사 사장 등의 참석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일보사 내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조선일보사는 자사가 공동 주최한 대회인데도 대상 수상자의 답안과 심사 교수의 강평, 소개 기사 등을 <조선일보> 지면에 싣지 않았다.(<중앙일보>가 서울대, 교육부와 공동 주최한 논술대회에서 중고등부 대상 수상자에게 한 면 전체를 할애한 것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대상 수상자인 대전 유성고등학교 3학년 한윤형(18) 군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윤형 군은 이번 대회 외에도,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독서경시대회' 금상, 연세대학교 주최 '논술대회' 우수상, 전남대학교 주최 '논술대회' 은상을 수상하는 등, 논리적 사고와 논술력에 있어 매우 출중한 학생이다. 그러나,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독서량이 또래에 비해 비교적 많다는 점 외에는,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3 수험생이다.
다만 한군은, '지식인들의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에 관해 평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왔고, 네티즌 커뮤니티 '우리모두'가 <한겨레>에 게재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킨 '나를 고소하라' 광고 서명에 참여하는 등, <조선일보> 문제에 관한 한, 고등학생으론 드물게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 생각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린 학생으로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유력 일간지에 자신의 글과 재능, 사진이 돋보이게 실린다는 건,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문인들의 예에서 보듯) 조선일보에 호감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도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텐데,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과 동기에서 인터뷰를 거부한 것일까?
한군은 자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사진 기자와 함께 방문한 <조선일보> 취재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취지로 거절 사유를 밝혔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인터뷰 기사 "내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한 이유" 참조)
"저는 안티조선 커뮤니티 '우리모두'의 참여자이고, <한겨레>의 '조선일보 반대 광고'에도 제 이름이 실렸습니다. 평소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에 기고하거나 인터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왔고, 최근의 '지식인 선언'이 평범한 시민들이 활동하는 '우리모두’의 토양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었지요. 그런 제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제 말을 스스로 뒤집는 일(자신이 실천하지 못할 일을 남에게 요구하는 일)이기에 취재에 응할 수 없었습니다."
한군의 인터뷰 거부는 조선일보쪽에 당혹감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서울대학신문>은 8월 28일자 편집자 칼럼에서 '<조선일보>가 고등학생에까지 망신당했다'고 표현함), 서울대의 관련 교수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가 되었다. 수상식 후 교수들과의 면담에서 그가 받은 첫 질문이, "너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했다며?"라는 데서도 그 점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교수는 "얘가 그랑프리야,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했대"라는 말로 동료들에게 한군을 소개했다 한다.
"뭐, 이번에 네가 쓴 글 보니까 거부할 만 하겠더라." (한윤형 군은 전체주의를 배격하고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으로 글을 작성했다. 아래 이어진 기사 "<조선일보>에 실리지 못한 심사위원의 논술 강평" 참조)
"괜찮아. 젊어서부터 타협하면 늙어서 설 자리가 없을 수도 있지." 교수들의 이해심 있는 말들은, 혹 아들로 인해 교수들이 불쾌했을까봐 걱정하던, 동행한 한군 어머니의 마음을 다소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교수들은 "조선일보쪽에서 엄청 황당해 했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한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원래 대상 수상자에겐 '논술 문제와 답안 3000자, 그에 대한 강평, 그리고 인터뷰' 등으로 신문 한 면이 통째로 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네가 인터뷰를 거부해서 그게 백지화된 거지..."
사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한 한군의 소신을 두고, '어린 나이에 평소 신념을 유혹적인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사례'로 높이 평가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아직 어린 학생이 사회와 언론을 얼마나 안다고 만용을 부렸느냐'며 혹평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를 바라보는 한윤형 군의 '비판적 관점' 자체에 대해선, 동의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사이에 엄청난 시각 차가 존재할 것이다. 또한,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들 중에서도, '과연 한군의 경우, 지식인도 성인도 아닌데 그냥 인터뷰를 했어도 비판받을 일은 아니지 않느냐'며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윤형 군의 당돌함과 고집 이면엔, 이 나라 지식인, 문인, 그리고 소위 386 정치인들이 그로부터 배워야 할 적어도 한 가지 특성이 숨겨져 있다. '눈 앞의 매력적인 당근' 앞에선 너무나 쉽사리 '자신이 과거 말하고 주장하던 바'와 상반되는 선택을 곧잘하는 그들과 달리, 이 18세 소년에겐 아직 '고지식한 올곧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윤형 군이 <조선일보>에 던진 충격과 파장은, 이 사건을 지켜 본 다른 이들에게도 신선한 충격과 깊은 인상을 남기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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