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세거리 책의 향기> 미아리에서 헌책방을 간다?

<헌책방 날적이 4> 2000년 9월 15일 찾아간 이야기

등록 2000.09.16 23:44수정 2000.09.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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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세거리-책의 향기> 02) 919-3583 / 016-761-2982

언젠가 미아세거리-지하철역 이름은 `미아삼거리'지만 `세거리'란 말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써 봅니다 - 역에서 내려서 잘 찾아가면 <책의 향기>란 헌책방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철역에서 잘 내렸지만 어느 나들목으로 나가야 하는 지 몰라서 그만 거꾸로 가고 만 적이 있죠. 그런데 나들목에서 거꾸로 나가서 십 분 남짓 가니까 그쪽에도 헌책방이 하나 있더라구요. 이름하여 <교양서점>.

<교양서점>은 차양막 버팀대 한 쪽이 부러진 듯 차양막이 오른편으로 기울어-밖에서 보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닥에 곱게 깔린 양탄자를 볼 수 있답니다. 도서관에도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양탄자를 헌책방에서 만나는 느낌은 참 알쏭달쏭합니다. 언젠가 어느 대학교 학교신문에서 `제발 도서관에 양탄자를 깔아서 지나다니는 학생들 발자국 소리 좀 안 듣고 공부하고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투고글을 본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고가 들어와도 학교쪽에서는 아직까지 양탄자를 깔지 않았다는군요. 하긴. 국립이든 시립이든 구립이든 도서관에 양탄자 곱게 깔린 모습 보기 쉽습니까?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책의 향기>에 가려면 4호선 미아세(삼)거리에서 내려서 2번 나들목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쪽은 `대지극장'이 있는 쪽이니 장위동 가는 길목이니 `대지극장' `장위동'이란 푯말을 잘 찾으셔도 좋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와 보니 대지극장은 2분 즈음 걸어가야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걸어가노라면 바로 오른편에 고가도로 올라가는 들목이 보이죠. 하지만 고가도로쪽으로 빠지면 안 되요. 그러면 영영 헌책방에 가지 못한답니다.

고가도로를 오른쪽에 끼고가면 신세계백화점도 보인답니다. 백화점을 보면서 길을 가노라면 지금 우리가 길을 가는 왼편 길에 `빅토리아' 호텔인지 나이트클럽 큰 건물을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네거리가 나오고 이제 그 네거리길에서 왼편에 구름다리(육교)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구름다리에 올라가 건너편을 보면 큼직한 `헌책방' 간판도 단 <책의 향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방은 참 깨끗해서 `헌책방' 간판이 없으면 보통 책 대여점이나 동네 작은 책방인 줄 알겠더군요. 제가 찾아갔을 때 안에서는 여중생으로 뵈는 아이들이 넷 책을 찾고 있습니다. 한 시간이 채 못 되게 책방을 둘러보는 사이에도 언저리에서 학교를 다니는 듯한 학생들이 퍽 많이 찾아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저리에 학교도 있지만 바로 이 헌책방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거든요. 학생들이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참고서나 자습서, 교과서도 찾고 만화책도 사서 보기에 딱 알맞은 헌책방 길목입니다.

하지만 책방 문을 열고 바로 오른편 책장 위에 수북하게 도색잡지들이 널려 있고 책꽂이에 잘 꽂혀 있습니다.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우리 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남학생 아해들이 이 도색잡지를 보며 군침을 흘리리란 생각을 안 할 수 없겠습디다.

아저씨가 앉아 있는 자리 앞으론 만화책이 잔뜩 꽂히고 쌓여 있습니다. 만화책을 더듬더듬 훑어보니 <김수정-꼬마 인디언 레미요,서울문화사> <김수정-오달자의 봄 2권>처럼 절판되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많이 찾는 만화책도 눈에 띕니다.


<책의 향기>는 문을 연 지 그다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책이 쌓여 있는 높이를 보면 알 수 있죠. 어른 가슴께 밖에 오지 않은 낮은 책장 알뜰히 책이 꽂혀 있고 그 위에 책이 얼마 있지 않네요. 하지만 벽을 꽉 채운 책꽂이는 두 겹으로 되어서 앞쪽 책꽂이는 바퀴를 단 책장을 쓰고 있습니다. 요즈음 새로 문을 여는 헌책방이나 책장을 크게 손보는 헌책방들은 이처럼 바퀴달린 책꽂이를 써서 좁은 자리에 책을 좀 더 많이 꽂아둘 수 있는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책꽂이를 보면서도 <책의 향기>가 얼마쯤 된 헌책방인지 얼추 짚어볼 수도 있지요.

오른쪽 벽을 가득 채운 책들 가운데 맨 왼쪽 끝은 종교쪽 책이고 오른편은 소설, 가운데 즈음은 인문사회과학과 철학입니다. 종교쪽 책과 인문사회과학 책 사이 즈음에서 <날자, 깃을 펴지 못한 새들이여!,사계절(1989)>를 봅니다. 이 책에는 지금 잘 알려진 사람들이 어리거나 젊었을 때 무엇을 고민하고 어떠한 환경에서 자기 스스로를 딛고 지금처럼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밝힌 고백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신옥희, 유시민, 박재동, 김근태, 윤구병, 권정생, 송건호, 안병무, 김정한씨 글이 있네요. 김근태씨와 윤구병씨와 송건호씨 사진을 보니 젊을 적 사진들입니다. 하지만 송건호 선생은 요즈음 건강이 아주 안 좋아서 식물인간과 다름 없이 살고 계시죠. 소설가 김정한 선생은 돌아가셨고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화수분'이란 작품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소설을 쓴 늘봄 전영택 선생을 떠올리며 전영택 선생과 함께 지냈던 일들을 교회 주보에 틈틈이 실었던 글을 모아서 펴낸 <주익태-늘봄 선생과 함께,종로서적(1978)>도 봅니다. <늘봄 선생과 함께>를 쓴 주익태씨는 이 글을 채 끝맺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답니다. 어둡던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한글학자로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을 빼고 자기 호를 한글로 쓴 이는 아주 드뭅니다. 우리가 아는 이라 하면 `가람 이병기 선생'이 있을 뿐이지요. 전영택 선생도 호를 한글로 `늘봄'이라고 지은 분입니다. 비슷한 호를 쓰는 분으로 돌아가신 문익환 선생이 `늦봄'이라고 썼지요.

박갑수 씨가 1978년에 쓴 <사라진 말 살아남는 말>까지 세 권을 골랐습니다. <권정생-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이 아주 깨끗한 상태로 한 권 있네요. 이런 새 책들은 헌책방에서 우연찮게 만나는 반가운 손님입니다. 헌책방을 찾는 책손님들은 책을 사보는 데 돈을 많이 쓰기에 보고 싶은 새 책이 나와도 가끔씩 주머니 사정 탓에 못 사고 때를 놓칠 때도 잦거든요. 그렇게 보고팠으나 미처 사지 못했던 책을 이렇게 헌책방에서 만나서 사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책값을 셈치르고 누런 봉투에 책을 담아서 나왔습니다. 나오며 명함을 한 장 들고나오는데 앞은 무지개빛으로 책 네 권과 사과 한 알을 그려 넣었네요. <책의 향기>라는 가게이름 밑에는 사장님 이름이 아니라 `헌 책 방'이란 세 글자를 박아 놓았군요. 뒤쪽을 보니 "참고서, 전과, 소설, 만화, 고서, 교과서, 성인잡지, 전문 서적 등 모든 책 사고 팝니다"란 글씨가 있고 그 옆에 <책의 향기>를 찾아오기 좋도록 땅그림(지도)도 그려 놓았습니다. 땅그림을 보니 버스 32, 35, 34-1, 6-1, 442번을 타고 "장위동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고 아주 친절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아리' 하면 먼저 좋지 않은 느낌을 받고 뭐 그런 동네에 다 가냐고까지-미아리에 사시는 분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죠.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미아리에도 좋은 헌책방들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책의 향기>도 미아리에서 찾아갈 수 있는 좋은 헌책방 가운데 한 곳이죠. 우리들이 미아리란 동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이 곳에 자리한 괜찮은 헌책방을 찾아와서 좋은 책도 만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아리에 가시는 분들이 아름다운 기억을 갖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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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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