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근 회사로부터 해고소식을 전해들은 KBS 환경직원 가운데 한 명인 박 모씨(여. 56)의 결혼을 앞둔 큰 딸이 KBS 박권상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박권상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이렇게 사장님께 글을 올리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긴 한숨으로 날을 새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몇 번 보곤 했지만 며칠 전엔 숨죽인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닌 우리가족 전체의 아픔이 돼버린 정리해고 소식에 더 이상은 지켜볼 수가 없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희가 살아온 삶을 이렇게 전하는게 그리 즐겁지는 않습니다. 저희의 삶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부끄럽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가 남들이 꺼리는 제일 힘든 일을 하시는 것을 좋아할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닌 아버지 병수발에 저희 네 자매를 위해 어린 동생들을 업고 그 무거운 소쿠리를 이고 행상을 하셨습니다. 비가 오면 못 나가고 단속반들에게 쫓겨가며 번 돈으로 온 가족은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나갔습니다. 어머니는 밥을 해주지 못할 때는 늘 미안해 했고, 한주일 내내 밀가루죽만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는 분 소개로 KBS 쓰레기장에서 분리작업을 하게 되었고, 어머닌 쓰레기 악취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습니다. 어릴때는 어머니의 퀘퀘한 냄새가 싫은 적도 없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험한 일과 역한 냄새로 인한 구역질보다도 단속반에 쫓기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다 KBS 청소부로 들어가신지 16년이 되셨습니다. 새벽 2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도시락을 싸시고 4시면 나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 운 적이 많았습니다.
어머니께선 아침은 회사에 나가시면 아저씨들이 주시는 커피로 때우시고 점심은 식당에 가셔서 빈그릇을 걷으시며 남는 음식으로 드시고, 음식 잔반들을 저희한테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벌써 13년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아직도 힘없이 쓰러진 어머니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날 이후론 어머니는 다시는 무너지지 않고 악착같이 저희들 뒷바라지를 하시며 사셨습니다.
생각이 납니다. 회사에서 대학 등록금이 나온다는 소식에 "너희들도 학교에 다닐수 있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항상 저희에게 용기를 주시고, '늘 감사하게 살아라. 나는 고생하고 비웃음을 당해도 너희들이 배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다'며 위로하셨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나온 등록금으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벽은 높았습니다. 대학을 나온 것과 나오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셋째는 재수를 하면서 학원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전문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네자매는 학교 다니면서 어머니한테 용돈 한번 받은 적 없었고, 떡볶이 값이 없어 친구들한테도 따돌림을 당해도, 남이 입던 옷을 입고 다녀도, 창피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
우리를 위해 아파도 결근 한 번 안하시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 한번 안하시던 어머니...
이젠 어머니 연세도 벌써 56세가 되셨습니다. 언젠가는 저희들도 어머니 곁을 떠나야 하는데, 그땐 어머니 혼자 어찌 사실지... 건강도 안좋으신데, 서로들 모시고 산다고 하지만 저희 뜻대로 될 일도 아니고 걱정이 앞섭니다.
사장님, 배고픔의 설움을 모르시겠죠.
방송국이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불우이웃 돕기 방송을 보면서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공영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해고라뇨. 이게 웬말입니까. 우리 어머니, 아니 그곳에 아주머니들께서도 대부분 가장으로서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의 가족으로 생각해 주세요. 사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믿겠습니다.
KBS에서 해고될 어머니의 딸이
덧붙이는 글 | KBS 환경직 직원의 따님이 보낸 편지를 일부 수정해 올립니다. KBS 환경직 직원들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3시 신관로비에서 농성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편 KBS 노조는 박권상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서울남부노동사무소에 고발한 상황입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과 '합리적인 공정한 대상자 선정', '해고 회피노력'등의 관계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 조합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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