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공씨책방> 헌책벌레 공진석 씨와 "개미소굴"을 아시나요?

개미소굴이라 불리던 <공씨책방> 다녀온 이야기

등록 2000.09.20 21:45수정 2000.09.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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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보름쯤 앞서 써둔 글입니다. 그냥 묵혀둘까 하다가 헌책쟁이로서 처음으로 <옛책, 그 언저리에서, 학민사>라는 책을 냈던 이름난 헌책방인 신촌 <공씨책방> 공진석 씨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보며 올려 봅니다.

지난날 공진석 씨는 헌책방을 꾸리면서 헌책방 이야기를 좀 더 널리 나누고 헌책방 문화를 퍼뜨리고자 자신이 꾸리는 헌책방을 찾는 여러 단골들에게 글을 받아서 소식지 <옛책사랑>을 내셨습니다.


지금은 지난 날과 같이 번듯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는 문화'를 넘어 `함께 나누는 문화'라는 것은 없어 뵈는 신촌에서 옹글게 헌책방을 꾸리는 <공씨책방>인 만큼 보름쯤 앞서 다녀온 이야기를 올리면서 여러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신촌 공씨책방>

지금부터 딱 열 해 앞선 때 일이군요. 1990년에 <공씨책방>에서 내던 "옛책사랑"이란 소식지는 아홉 번째 소식지를 마지막으로 냈습니다. 알다시피 공진석 씨가 버스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뒤로 "옛책사랑" 펴내는 일을 대신 맡아서 해 준 사람이 없었답니다.

두 자리 숫자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 나온 소식지. 제가 우리 말 소식지를 내며 함께 싣던 헌책방 이야기를 따로 모아서 "헌책사랑"이란 소식지를 낸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옛책사랑"에서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싣는 한편 그 흐름을 이어보고픈 마음이 있었죠.

그러나 "옛책사랑"은 여러 사람들이 쓴 글을 고루 담아서 내지만 제가 엮는 "헌책사랑"은 글을 써 주는 이가 없어서 저 혼자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곳곳에 흩어져 있으면서 서로 오갈 짬 없이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헌책방 임자분들이 제가 엮는 단촐한 소식지에서나마 어떤 책이 책손님 눈에 띄고 요새 어떻게 살아가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지금으로선 헌책방을 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듣고 보아서 잘 머릿속에 새겨두었다가 `방문기' 즈음 날적이로 적으면서 헌책방 이야기를 끄적입니다. 그래서 헌책방에서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헌책방'이라는 문화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씨책방>에 언제쯤 왔었나 돌아보니 지난 유월에 왔더군요. 그러니 두 달만에 온 셈입니다. 그리고 두 달 앞서 왔을 때는 앞서 일하던 곳을 그만두며 이제 더는 찾아오기 힘들겠다 싶어 그때도 여러 달만에 찾아갔었고요.


요즘 헌책방 사진을 자주 찍으려 애쓴답니다. <공씨책방>만 해도 제가 처음 찾아가던 94년에는 지금 자리보다 현대백화점쪽에 훨씬 가까운 버스정류장 앞에 있었거든요. 버스정류장을 앞에 두고 아래로 움푹 파인 길가에 자리했을 때 사진 한 장 찍어두지 못했기에 그때 흔적이나 모습은 그저 이야기로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헌책방에 갈 때면 늘 사진기 챙기는 일을 점검한답니다.

그렇다고 하나 헌책방 사진도 함부로 찍기 힘들죠. 사람들이 헌책방을 `남다른(특이한)' 곳으로만 생각해서 사진 찍겠다 그러기도 하고 사진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가끔씩 작품 만든다고 찍으러 오니까요. 기자란 사람들도 말 없이 사진 찍고 가버리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래저래 뜻이 있어서 무언가를 해 보려는 사람은 이런저런 벽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직 <공씨책방> 아주머님과 가까워지지 못했기에 사진기를 쉽게 꺼내놓지 못했죠. 어쨌든 헌책방과 가까워지려면 책도 부지런히 사 보고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제 형편이 쉽게 닿지 못하니 잘 안 되더군요. 그리고 여러 해 걸쳐 틈틈이 찾아와서 낯을 익히면 그때 가서 하리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어제는 사실 <숨어있는 책>에 가려던 길에 들렀기에 책을 많이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옛책이 꽂힌 자리를 보다가 퍽 볼 만한 자료들을 많이 찾았습니다. `이번엔 여기에 이런 걸 찾으러 가야지'하면 그 날은 손에 제대로 건지는 책이 한 권도 안 나올 때가 퍽 잦습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일도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지 않으며 자기 분수껏 책을 보거나 한두 권 건지면 다행이다고 생각해야 책도 잘 보거든요. <공씨책방>도 오늘 날 잡아서 가는 만큼 무언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기에 여러 가지 값진 책들을 보지 않았나 싶어요.

먼저 <김구용 시집 1, 三愛社(1969)>가 보이더군요. 김구용이란 사람은 모르지만 요새 이 사람 전집이 어디에선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지요. 어떤 사람이길래 다시 전집을 낼까 싶기도 하고 책이름이 없이 그냥 `시집 1'이라 하는 품새도 무언가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녀석은 제게 쓸모가 없어도 시집을 모으시는 분이 있어서 그 분에게 연락하고 드릴 수도 있기에 선뜻 고를 수 있었습니다. 만해시집을 빼놓고는 손에 넣어 보지 못한 시집이 없다고 했으니 이 녀석도 손에 넣어 본 적이 있거나 갖고 계실지도 모르죠.

아무튼 이 녀석을 고르고 한참 이러저러한 책을 살펴봅니다. 낱말책 자료로 쓸 만한 녀석들이 있나 하고 눈알을 굴리는데 그다지 눈에 잘 안 띄네요. 남영신 선생이 엮은 맞춤법-표준어 사전 첫판이 있기는 한데. 소설과 인문사회과학 쪽 책은 안 나가는 책은 여전히 여러 해 지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군요.

좁은 책장 틈을 살며시 빠져나가며 만화책이 꽂힌 책장을 지나니 고전이라 할 만한 책들이 꽂힌 책장이 보입니다. 그 사이에 사계절에서 나온 카프소설선집이 눈에 띕니다. 책을 뽑아 자리매김을 보니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 소설이 여럿 보이네요. 이 사람들 소설을 읽으며 낱말을 헤아려 보면 좋겠구나 생각하면서 바로 그 오른쪽 책장에 가득 꽂힌 옛책을 봅니다.

먼저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가 엮은 생물학도보 책이 보입니다. 아주머니에게 값을 슬며시 여쭈니 만삼천 원을 부르십니다. 예상값보다 삼천 원이 비쌌지만 찾아보기 쉽지 않고 고서점에서 부르는 값의 절반조차 안 되니 집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나중에 다른 책들을 사고 책값을 셈할 때 제가 가진 돈이 모자라서 이 책은 뺐답니다-.

책이름이 뵈지 않는 녀석들은 더 꺼내보고픈 마음이 들지요. 옛책 가운데에도 이런 녀석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꺼내보니 판권은 떨어져 있어서 언제 나왔는지 알 길이 없으나 `영친왕비의 수기'란 책이 있더군요. 영친왕이란 사람은 가끔 텔레비전에 어떻게 살아가나 하며 나오지만 영친왕비는 전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머리말을 보니 영친왕비 되는 사람은 일본으로 끌려간 듯하고 조국이 해방된 뒤에도 열 몇 해가 넘도록 건너가지 못해-일본 정부에서 못 가게 했다더군요- 그곳에서 눈물만 흘리며 사노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조금 뒤적여 보니 옛날 신분 탓에 일자리도 얻기 힘들고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 이렇게 되었냐고만 묻지 자신이 굶어죽든 말든 일자리를 찾든 말든 그런 일에는 그다지 신경도 안 써서 보모도 못하고 청소부도 못하는 어려운 삶을 겨우 꾸린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이 책을 돈이 없어서 사진 못했지만 언제 한 번 사서 봐야겠다 싶습니다. 글쎄 재미는 없고 역사 값어치가 없을지 모르나 영친왕비라 하는 사람도 `숨어사는 외톨박이'처럼 쓸쓸히 묻혀져가는 우리네 이웃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성은 더 더욱 사람 대접 못 받고 그늘 속에 가려지는 우리네 현실인 만큼 영친왕도 그렇고 영친왕비는 더욱 어렵게 살아가리란 건 눈에 훤한 일이라고 느낍니다.

옛책들이 저에게는 무척 값어치 많은 녀석이 많아서 나중에 돈 좀 싸들고 와야겠네요. 좀 더 살피며 문세영 씨가 엮은 <실용국어사전(4286 재판)>과 4291년에 교과서로 나온 <세계명곡집 베스트 1300>과 금수현 씨가 엮은 <표준 음악 사전(4293)>을 더 골랐습니다. <실용국어사전>은 토박이말은 없고 이 책에 실었다는 이만 낱말은 모두 한자말입니다.

<세계명곡집>을 쓴 임자 되는 사람은 여기에 우리 가곡 악보도 붙이고 낙서도 많이 하고 아무튼 책에 손이 무척 많이 가서 너덜너덜합니다. 그만큼 노래도 즐기고 많이 부른 듯해요. 젊었을 적 금수현 씨 사진도 실려 있는 <표준 음악 사전>은 양장이기도 하지만 상태가 아주 깨끗합니다.

책값이 넘쳐서 카프소설선도 제자리에 다시 꽂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책방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쭈었습니다. 한 열 해쯤 헌책방 사진을 찍으면 그때 가서 전시회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찍는다고 하니 찍으라고 허락해 주십니다. 책방 들머리부터 찬찬히 흑백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한 번에 다 찍을 수 있지는 않으니 열 장 남짓만 찍었습니다.

그리고 책꾸러미를 들고 나서는 참에 "옛책사랑"은 다시 안 나오냐고 넌지시 여쭈었죠. 아주머니 당신은 능력이 안 된다고 하지만 책방을 꾸리면서 틈을 내기 어려울 테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 주겠냐는 사람은 없는지 여쭈니 그런 사람들이 적잖이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 해야지 "옛책사랑" 이걸 내는 일은 남에게 맡길 만한 일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걸 몇 권 가지고 있는지 물으시곤 여덟 번째 소식지 두 부를 주십니다. 이 소식지가 쓸모있는 사람에게 한 부 드리라는 말씀과 함께요.

<공씨책방> 언저리는 사람이 뜸합니다. 그러나 버스나 전철을 타러 신촌역 언저리로 가면 바글바글한 게 꼭 `개미소굴'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날 개미소굴이 바로 헌책방 <공씨책방>이었다면 지금 개미소굴은 이처럼 연대앞, 이대앞, 어디 어디처럼 젊은 사람들 많이 몰리는 곳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에게 `쓰고 즐기는 문화'도 있겠으나 `배우고 공부하는 문화'도 있지 않겠습니까. 배움은 죽을 때까지 하고 책읽기도 눈이 멀 때까지 하는 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먼지 앉은 책을 털어내 종이뭉치에서 책으로 탈바꿈하게 하고 우리들 마음도 다진다면 `쓰고 즐기는 문화'도 더 알차게 누리고 우리 마음도 한결 더 넉넉하고 푸근해지며 사람 사는 사회가 좀 더 살맛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만히 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언가 `사람 사는 세상'을 생각하노라면 길가면서 어깨를 툭툭 치고 간다든지 비오는 날 우산을 들면서 지나가는 사람 눈 찔릴 만큼 자기만 비 피하면 된다는 투로 다니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덧붙이는 글 | <신촌 공씨책방> 02) 336-3058 / 011-9914-3058

제가 펴내는 헌책방 소식지 <헌책사랑>을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now36379@nownuri.net 으로 연락하시면 인터넷편지로 보내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신촌 공씨책방> 02) 336-3058 / 011-9914-3058

제가 펴내는 헌책방 소식지 <헌책사랑>을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now36379@nownuri.net 으로 연락하시면 인터넷편지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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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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