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의 손안대고 코푸는 비결

방송협찬 속사정을 통해 본 지식산업 육성의 허

등록 2000.09.25 16:25수정 2000.09.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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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 출범 직후 떠들썩했던 어떤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지식산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텔레비전에 연일 신지식인이니 어떠니 캠페인이 나오고 대통령은 기자회견마다 ‘지식 산업’이야기를 들먹였습니다. 개중에는 영상산업에 대한 지원 이야기도 허구헌날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 게 별로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기자가 이야기 하려는 한 분야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분야는 방송프로그램 독립제작 즉, 외주 제작과 협찬에 관한 이야기, 구체적으로 말하면 협찬을 두고 벌어지는 방송사와 방송위원회의 지저분한 이야기입니다.

독립제작사(외주제작사)들이 방송사의 뻔한 작품료로는 제작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협찬을 받아서 제작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외주제작을 따기 위해 협찬을 받아 방송사를 찾아가 프로그램을 달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방송사는 제작에 투여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좋아합니다. 대신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의 협찬사 고지만 해주면 되니까요. 그런데 독립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협찬을 받더라도 문제는 아주 복잡합니다.

공식적으로 방송사의 자체 제작인 경우 공익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협찬 방송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들 하죠. 대신에 그나마 외주 제작사의 경우 협찬의 길을 많이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성사시키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먼저 협찬사 고지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실제로 이를 규제하는 방송위원회의 규정에 의하면 협찬사를 고지할 경우 정확히 협찬단체 혹은 기업의 이름만 고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의 로고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혹은 색깔 있는 보드를 만들고 그 위에 기업이름을 올리는 것도 원칙상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기업들이 광고료를 많이 지출하는데 인터넷 기업의 경우 자신의 도메인 노출을 희망합니다. 하지만 이건 아예 어림 없는 이야기입니다.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면 원칙적으로 협찬사의 이름을 자막으로 고지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광고 효과를 위해서 협찬을 하는 협찬사의 경우 효과가 미미하리라 판단되는 협찬을 꺼리게 되는 거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협찬을 통한 제작이 성사 되었다고 하더라도 방송사의 횡포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립제작사가 협찬을 잡아 왔더라도 그 협찬금을 먼저 방송사로 입금(즉 방송사와 협찬사가 직접 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시키고 제작사는 그 협찬금의 일부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방송사에는 이 협찬 부분만을 전담으로 관리하고 검토하는 부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방송사는 돈 한푼 안들이고 만든 프로그램에 광고 붙여서 수익을 보고 게다가 덤으로 협찬금까지 챙기려는 수작이죠. 적게는 협찬금의 10%, 많게는 30%까지 떼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핑계를 여러 가지 내세웁니다. 여기서 더 가관인 것은 외부에서 성사시켜 온 협찬을 직접 관리하는 이유입니다. 협찬사가 영세하다 보니 사기의 위험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면 도대체 왜 협찬금을 떼가는 것일까요? 자신들은 프로그램에 광고 부쳐 수익을 보는데 말이죠. 명목은 더욱 더 기가 찹니다. 전파 사용료라고 합니다. 이건 외주 제작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는 것에 대해 외주제작사에 전파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언급하는 방송사란 주로 공중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공중파라고 하는 전파는 개개 방송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공의 재산입니다. 바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무슨 전파 사용료를 징수한다는 것일까요? 말이 안되는 항목인 셈입니다. 좌우지간 외주제작사가 협찬을 받을 경우 이중고를 겪게 되는 거죠.

간접광고를 규제하는 방송위원회의 취지는 아주 타당합니다. 그러나 실행의지는 의심이 갑니다. 간접광고의 경우 가장 많은 사례가 연예인이 특정 패션브랜드를 입고 나오는 행위나 화면에서 특정 장소나 상품이 배경 혹은 소품으로 모자이크도 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경우입니다. 아주 공공연히 행해집니다.

매번 언론이나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문제시 되면서도 개별 프로그램에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번번히 행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협찬사 고지 규칙을 어기는 행위도 방송사는 버젓이 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뿐입니다. 실제로 협찬사 고지 방식을 어길 경우 방송사는 2000만원까지의 벌금을 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2000만원의 벌금을 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텔레비전을 유심히 보신 분은 알겠지만 예전부터 방송사 자체제작의 협찬같은 경우 아주 그럴 듯하게 로고까지 써가면서, 칼라 보드를 아래에 깔아가면서 협찬사 고지를 해 줍니다. 심지어 인터넷 업체의 경우 심심찮게 도메인 고지가 나가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이런 규정이 무시된 거죠.

한가지 명확한 것은 이런 규제가 현재의 새로운 방송위원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사는 이런 규제를 거의 무시했지만 별 제제를 받지 않았고 외주제작사는 이에 엄청난 영향을 받아 왔고 그만큼 협찬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방송의 50분짜리 다큐물을 납품할 경우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의 작품료를 줍니다. 그러나 잘 만들려고 하다 보면 이 금액으로는 외주제작사가 적자를 보기 마련입니다. 이런 외주제작비의 현실화가 요원하다면 외주제작사의 협찬의 경우 협찬 고지에 대한 좀 더 관대한 규제가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기업화되어 있는 공중파 방송국은 기업 윤리를 발휘해야 합니다. 외주제작을 할 경우 그 자체가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으니 협찬금마저 빼앗는 몰염치한 행동은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외주 제작자를 살리고 활성화시키는 방법일 겁니다. 그리고 크게 보면 지식 산업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작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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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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