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시어머니 그리고 태권도

<이색 터키 문화 이야기 1>

등록 2000.09.27 23:40수정 2000.10.1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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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매주 한 차례 정도 터키에 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 몇 가지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아마 우리에게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곳 혹은 이스탄불의 거대한 사원들과 같은 터키의 문화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잘 모르는 터키의 문화가 있겠죠. 바로 제가 여행에서 눈으로 확인한 터키의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가지를 여기에 싣고자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바로 태권도 이야기입니다. 요즘 올림픽으로 인해 전세계의 태권도 열풍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종주국으로 8개의 금메달 중에서 4개에 도전하여 3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태권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터키가 바로 태권도 강국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너무나 신기한 것을 보았기에 그 것에서부터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본 기자는 얼마 전 터키를 열흘 정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여행은 아니고 업무상 갔습니다. 소피아 사원이니, 톱카프 궁전이니 이스탄불의 가장 유명한 유적들이 밀집해 있는 술탄 아흐멧 지구 피에르 로띠라는 호텔에서 이틀을 지내는 동안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유적들을 대충 둘러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스탄불은 제가 가장 가고 싶어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를 예전에 간 적이 있어서인지 유적들에 대한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터키에 대한 나의 환상은 그냥 막연한 이국적 정서에 대한 동경에 불과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터키적이지 않은 어떤 것에 내가 놀라고 감동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탄불 도착 이틀째 날 다음 날이 에르주름으로 떠나는 날이어서 일행 모두 일찍 호텔로 돌아와 쉬고 있었는데 무심코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의상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태권도 도복과 헤드기어였습니다.


그런데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스포츠 뉴스도 해외단신도 아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우리 나라의 KBS ‘가족오락관’같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출연자들은 케잌 던지기, 퀴즈 등의 게임을 하고 사회자는 그런 중간 중간에 출연자의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서 케잌을 그들 얼굴에 문지르기도 하고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흐르는 브릿지 영상물로 봐서 프로그램 제목은 터키어로 ‘Gelin Kaynana’였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터키에는 대충 4,5개의 공중파와 40여개의 케이블 방송국이 있으며 그외에 터키 사람들은 7,8개의 외국 위성방송을 합법적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화면 좌측 상단에 aTV라는 로고가 있었는데 공중파는 아니고 케이블 텔레비전인 듯 했습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프로그램의 사회자와 출연자가 입고 있는 의상이었습니다. 태권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프로그램인데 사회자도 출연자도 태권도복에 경기용 헤드기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회자는 음악에 맞추어 태권도 자세를 응용한 춤을 추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반대중을 상대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것도 쇼 프로그램에서 태권도 의상을 주요 소품으로 쓰고 있을 정도로 터키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엄청납니다. 98년의 경우 세계 주니어 태권도 대회가 이스탄불에서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여행 다녀온 이후 좀더 알아본 바에 의하면 Gelin은 우리말로 시어머니, Kaynana는 며느리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제목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터키도 우리 나라처럼 고부간의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착안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출연해서 게임, 놀이, 퀴즈를 함으로써 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려는 취지 하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듯 합니다. 3년 전에 터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이 그때 이미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으며 당시 아주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aTV는 잘 나가는 터키 민영방송이라고 하는데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프로그램 제작 담당자를 만나 왜 태권도복을 입히는 것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우려도 사실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나라가 태권도 종주국으로써 전세계에 태권도를 전파하는 태권도 강국이지만 아마 그런 상황은 조만간 변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들 아다시피 우리의 태권도 문화는 도장 문화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학교나 군대에서 강제적으로 행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태권도를 전파한 몇몇 국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태권도가 도장에서 배우는 무도의 하나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선한 붐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터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태권도 붐이 하나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태권도가 그런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분명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올림픽의 정식 종목이 되고 바야흐로 태권도의 본격적인 세계화가 실현되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태권도 종주국이지만 태권도 강국은 아닌’ 그런 상황이 도래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른 나라의 태권도 열풍이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죠.

29일부터 시드니 올림픽의 태권도 경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총 8개의 금메달 중 4개에 도전합니다. 현재로는 3개 정도의 금메달을 예상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기대가 그대로 실현될 지는 의문입니다. 부디 3개를 기본으로 하고 4개까지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으면 하고 기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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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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