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 얼마에 구입하셨어요?"

순간적인 유혹을 불러오는 질문 앞에서

등록 2000.09.30 13:50수정 2000.10.1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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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게 역사적인 날입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이름의 차를 소유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유학 와서 미국이란 곳이 차 없이 살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척이나 난감했습니다. 처음에는 근 한달 이상 다른 분들의 차를 함께 이용하면서 살았지만, 도저히 차 없이는 생활하기가 불가능해 보여 싸고 경제적인 차를 찾아 다녔습니다.

1991년식 도요타(TOYOTA)의 코롤라(COROLLA). 우여곡절 끝에 우연히 학교 게시판을 통해 제가 구입한 중고차입니다. 주위의 조언으로 인해 3500달러라는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적정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차가 잘 관리돼 왔던 터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차가 참 깨끗했구요.

텍사스에서 차량 명의 이전을 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보험에 가입을 해야 하고,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텍사스주 면허를 소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국제면허로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금이 꽤 비싸지기 때문이지요. 강의가 없는 날에 시간을 내어 면허 시험을 치루고 보험에 가입하고 해서 드디어 29일 명의 이전을 하기 위해 텍사스주 교통국으로 향했습니다.

담당 직원이 등록을 위해 몇 가지 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 얼마에 차를 구입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 때, 길안내를 위해 동행했던 분이 말씀하시기를 세금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 그냥 선물로 받았다고 말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잠시 주저하다가, 저는 그냥 3500불이라고 대답을 했지요. 그 결과 저는 230불이 넘는 돈을 세금으로 물게 되었구요.

선물이라고 신고하면, 전혀 세금을 안 내도 된다니 자본주의 미국의 순진한 일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명의 이전을 해 본 적이 없는 터라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함과 동시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잠깐의 거짓말로 양심을 속이기엔 230불(한화 약 27만원)이라는 돈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제가 학교에서 거의 3주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기에 결코 작은 돈도 아니었습니다. 거창하게 양심이니 거짓말이니 생각지 않고 그저 다들 그러려니-동행하셨던 분의 말을 빌리자면-하고 짐짓 모른 체 슬며시 대답할 수도 있었겠지요. 선물로 받았다고 말하더라도 그 전 차주인에게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 일부러 누군가와 공모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간편한 일 아니겠습니까.

짧은 순간이었지만-우리 삶에는 짧은 순간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왜 그리도 많은 것인지-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소위 공교육 이라 불리우는 초중고 12년 혹은 그 이상 동안 많고 많은 '도덕'과 '윤리'수업에 배웠던 것은 시험문제에 대한 답이었지, 단 한번도 삶과 관련된 정말 중요한 가르침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돈 얼마에-비록 적은 돈이 아니라 하더라도-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차라리 좀 힘들더라도 당당해지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늘 제가 경험했던 이런 류의 시스템은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예상되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규정을 마련해 놓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을 유혹에 노출시켜 얼마간의 금전적 이유로 인해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유쾌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스템의 출발은 전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해 인간의 자율과 존엄을 존중해 주니 말입니다.

개인적인 이익과 결부되어 유혹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질문들. 이것은 과연 인간적일까요 아니면 비인간적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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