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수 전의원 관련계좌에 입금된 괴(怪)자금의 정체는 무엇인가.
검찰은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황명수 전의원의 가족계좌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뭉칫돈이 입금되었다가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 이것이 알스톰사의 고속철도 로비자금인지 안기부의 총선용 자금인지를 수사중에 있다.
문제의 뭉칫돈의 출처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알스톰사의 로비자금 가운데 수십억원씩이 황명수 전의원 등에게 전해졌다는 진술이 있었지만, 그 로비자금으로 보기에는 자금의 규모가 너무 크다.
더욱이 입금된 돈이 15대 총선 직전에 정교한 돈세탁 과정을 거쳐 인출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안기부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선거자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기업들을 상대로 안기부가 나서서 여당 선거자금을 걷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돈은 안기부의 은닉된 예산 가운데서 지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국민들의 관심은 고속철도 로비 사건을 넘어 자연스럽게 괴자금과 안기부의 연관성 여부로 향하고 있다.
선거자금 혹은 정치자금에 관한 수사가 언제나 그러했듯이, 괴자금의 정체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도 정치적 논란이 따르고 있다. 야당측에서는 야당 정치인들을 위협하여 정국반전을 노리는 음모라며 검찰수사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정치권의 검은 돈에 대한 수사가 있을 때마다 나타난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는 사건의 내용이 검찰의 책임있는 설명이 아니라 '설'(說)을 통해 알려지곤 했다는 점이요, 둘째는 사건이 여야간의 정치적 공방거리로 변질되어 진상규명조차 되지못한채 결국 흐지부지 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사정(司正)정국의 전개과정이 그러했고,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의 수사가 그러했으며, 각종 로비의혹의 뒷처리가 그러했다. 문제는 온갖 풍문만이 난무한 후에 여야간의 격렬한 공방 속에서 정작 사건의 진실은 가려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 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책임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이를 야당흔들기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여권, 무조건 야당탄압임을 주장하며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거부한 야당,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채 정치검찰의 오명을 씻어내지 못한 검찰 모두에게 있다.
이번 괴자금에 대한 검찰수사 역시 과거와 같은 정치적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과거의 사건들보다도 훨씬 큰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여야간의 논란도 더욱 격렬해질지 모른다.
물론 수사에 따른 정치적 고려도 있을 수 있다. 사실 현재의 정국에서 이 사건의 돌출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신한국당 출신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야당은 당연히 야당탄압음모라고 주장하며 반발할 것이다.
여당조차도 가까스로 영수회담이 성사되고 국회정상화가 이루어진 마당에 검찰이 야당을 자극하는 돌출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다. 게다가 김영삼 전대통령이 자신을 겨냥한 수사로 해석하고 있는 이상, 그의 극한적 반발에 따른 정국의 난기류가 조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같은 정치적 고려에 따라 사건을 덮을 상황은 분명 아니다. 정치적 고려에 따른 사건의 축소와 은폐는 더 큰 정치적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그간의 경험이었다. 검찰로서는 사건의 전모를 있는 그대로 명명백백히 밝혀내는 것만이 검찰수사를 향한 의혹의 시선들을 오히려 불식시키는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검찰이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하기에는 정치적 풍파가 매우 심할 것 같다. 과연 검찰이 정치권의 외압을 외겨내고 강도높은 수사를 펼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논리에 밀려 다시금 용두사미(龍頭蛇尾)식의 결론으로 흐지부지 끝나고말지 함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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