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올림픽. 우리나라 강초현 선수가 마지막발을 쏘기 앞서까지 줄곧 1등을 달리다가 마지막발에서 작은 잘못으로 0.2점이 모자라 미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만 적이 있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볼 때는 참 안타깝고 아쉽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금메달을 땄든 은메달을 땄든 올림픽에 나가서 잘 했다는 일만 떠오릅니다.
그런데 경기를 지켜보던 그때, 은메달을 딴 강초현 선수에게는 사진기와 촬영카메라가 그다지 뒤따르지 않더군요. 거의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에게만 사진기와 촬영카메라 세례가 뒤따랐습니다. '1등'만을 바라보는 건 우리만이 아닌가 보죠.
그런데 올림픽에 나가 동메달을 따는 일도 훌륭한데 은메달까지 땄으면 그걸로도 기뻐야 할 텐데. 내내 1등을 달리다 2등으로 따라잡혔으니 충격이 참 크고 슬프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등'이 아니면 거들떠보아 주지 않으니까요. 이등을 해서 은메달을 땄어도 잘 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다들 금메달을 몇 개 따서 등수 몇 위에 오르느냐에 눈길을 두잖습니까. 사실 강초현 선수가 은메달을 딴 뒤 나온 신문과 방송 소식을 듣고 보면 "아쉽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하면서 '은메달이라도 땄다는 일 자체가 반갑다'는 마음은 거의 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돌려서 헌책방 이야기를 하노라면 가끔 어디선가 취재를 나와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지면이나 방송 사정에 따라 '딱 한 군데' 가장 좋은 곳이 됨직한 곳을 묻는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가장 좋은'은 없는 듯해요. 여기는 이러해서 좋고 저기는 저러해서 좋거든요. 사람마다 다 빛깔이 다르고 생김이 다르고 말씨가 다르듯 헌책방도 다 다르죠. 그래서 사람이든 헌책방이든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좋은 헌책방'은 없습니다. 가장 좋다면 모두 가장 좋습니다-다만 사랑하는 사람과 어버이는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첫날, 다른 종목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다면 은메달도 잘 다뤄 주겠죠. 그러나 사격이란 운동이 '인기 종목'이 아닌 만큼 '금메달'이 아니고서는 격려를 하지 않으니 참 문제입니다. 축구 선수단이 메달은 따지 못하고 8강이나 4강에만 든다 해도 경사라고 하잖습니까. 이것참. 올림픽은 최선을 다해서 뛰는데 참뜻이 있다고 하지만 속으론 다들 '금메달! 금메달!' 하고 있어요.
운동은 몇몇 선수만 뛰고, 많은 사람은 구경만 한다면 운동이 아닙니다. 다 함께 즐기고 뛸 수 있어야 운동이죠. 운동은 다 함께 뛰고 즐기는 데 뜻이 있다면 헌책방은 누구나 찾아가서 책을 보고 살 수 있다는 데 뜻이 있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그 많은 헌책방들 가운데 꼭 한 군데 가 보라고 추천할 만한 곳'이 있다면 그 가운데 어디냐고 물으면 '어떠한 책'을 보기에 좋은 곳을 묻느냐고 다시 얘기하고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 동네 헌책방에 가 보라고 넌지시 이야기해 줍니다.
바로 자기가 사는 동네에 가까이 있는 헌책방도 찾아가지 않으면서 '꼭 가보라는 가장 좋은 헌책방'만을 찾는다면 정작 헌책방에 가서 보아야 할 책은 보지 못하니까요. 헌책방을 찾는 까닭은 '책을 보고 사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 봅시다. 운동은 '1등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운동은 '몸을 튼튼히 하며 마음을 튼튼히 한다'는 말처럼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일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목적을 잃고 사는 듯합니다. 운동은 왜 합니까? 헌책방에는 왜 갑니까? 공부는 왜 합니까? 취직은 왜 합니까? 밥은 왜 먹습니까? 가장 바탕이 되는 목적을 잊고 참답게 살지 않으면 우리 삶이 엉망이 되고 아름다움과는 멀어짐을 가끔이라도 생각하며 삽시다.
덧붙이는 글 | * 최종규 기자가 쓴 헌책방 나들이 글은 http://penw.nownuri.net 에 가셔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쯤 내는 헌책방 소식지 <헌책사랑>을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최종규 기자에게 인터넷편지로 연락해 주시면 보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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