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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에 있다는 <문화당서점>과 <글방서원>은 이야기는 세 해쯤 앞서 들었지만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찾아가기 쉽지 않아 어제 비로소 찾아갔답니다. 저는 95년부터 동대문구 이문동 외국어대 언저리에서 홀살이(자취)를 하며 살았기에 은평구와 강남을 찾아가기가 참 힘들었죠. 그러다 어제 짬을 내서 둘 가운데 한 곳은 찾아가 보자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 지하철로 3호선에서 내려서 6번 나들목으로 나오면 <문화당서점>을 찾아갈 수 있고 5번 나들목으로 나오면 <글방서원>을 찾아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그 생각만 하고 먼저 6번 나들목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들목으로 막상 나오고 보니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저으기 헷갈리더군요. 처음 와 본 낯선 연신내였는데 퍽 복잡하고 큰길도 넓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분들도 연신내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오자면 꽤 길을 헤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길을 헤맬 수도 있으니- 천천히 발길을 옮깁니다. 낮밥을 거르고 찾아가는 길이라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길가에 자리한 밥집들에 자주 눈길이 가네요. 전철역 나들목에서 나오고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오른편에 롯데리아를 지나갔고 그 뒤에 나온 오른쪽 골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수많은 술집, 미용실, 밥집 들 간판 틈바구니에 "헌책 <-" 이라고 쓰인 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간판은 <문화당서점>을 가리키는 간판이었습니다. 큰길가에 있지 않고 골목 하나를 꺾어들어 가야 하기에 길눈이 낯선 이들은 책방을 못 찾고 헤매기 쉽겠네요. <문화당서점>을 찾아가시려면 전화번호를 꼼꼼히 챙겨서 못 찾겠다 싶으면 곧바로 전화를 하세요.
여러 헌책방을 다녀 보면서 이렇게 어수선한 유흥가라고 할까요? 번잡한 골목 틈바구니에 자리한 헌책방은 처음 보았습니다. 번잡한 길가는 시끄럽기도 해서 책방에서 책을 보기도 쉽지 않고 가게세도 비싸서 어지간해서는 이런 곳에 자리하지 못하거든요.
그러나 이같은 골목과 유흥가 비슷한 곳에도 헌책방이 하나둘 자리하며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데에만이 아니라 문화도 느끼고 잠깐 숨을 돌리고 한갓진 마음으로 책을 볼 수 있다면 그 일도 또한 좋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당서점>은 책방 크기가 작은 편입니다. 용산에 있는 <뿌리서점> 크기와 엇비슷하다고 할까요? 책도 퍽 많이 쌓여서 책장 앞에는 책더미가 두 겹 세 겹으로 쌓여 있어서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집니다. 저도 마음 놓고 몇 겹 쌓인 책더미 앞에서 책을 보다가 갑자기 무너진 책더미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잠깐 얼얼해 했답니다.
제가 책더미에 맞도록 다른 데 신경을 못 쓰도록 한 책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노라 옥자 켈러란 사람-어릴 적에 하와이로 건너가서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음-이 어느 날 정신대 할머니 강연을 듣고나서 많이 깨달은 뒤 썼다는 소설 <종군위안부,밀알(1997)>였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도, 식민지살이 역사와 한도, 그때 종군위안부로 몸을 바쳐서 논다니처럼 살아야 했던 여성들 이야기를 튀기(혼혈아) 여성이 소설로 썼다? 느낌이 참말로 싱숭생숭합디다. 같은 이름으로 된 <종군위안부>라는 연구서가 창작과비평사에서도 나온 적 있습니다.
좀 한갓지게 책방에서 책을 살피는데 젊은 학생들도 책을 사러 옵니다. 일반 책들을 보다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셈치르는 곳 뒤에 있는 옛책(고서)들도 눈에 띄어 살펴봤죠. 주욱 훑어보니 볼 만한 옛책들이 많습니다. 하나하나 책이름이 떠오르지 않지만 1960년에 번역된 조지 깃싱 수필집도 있고 해방된 뒤 나온 <이광수-이차돈의 사>도 있고 식민지 때 나온 <조선식물학명집>도 있습니다.
식민지 때 나온 책들도 퍽 자주 보이는데 상태가 괜찮습니다. 이승만 미화 서적들도 자주 눈에 들어오고 귀하다고 하는 문집들도 보입니다. 폐간되었다고 얼마 앞서 다시 나오고 있는 <월간 다리> 합본호도 있는데 이 합본호는 풀로 책들을 붙이지 않고 두꺼운종이로 껍데기를 만들어 그 안에 책을 하나씩 끼워 넣었더군요.
<조선식물학명집>이 얼마냐고 넌지시 여쭈었습니다. 그러니 십이만 원이라 하십니다. 값이 싸지 않네요 하니 "이 사람아, 그래 봤자 이만 원밖에 안 남아" 하십니다. 그러니까 <문화당서점> 아저씨도 그 책을 십만 원 주고 사 왔다는 이야기겠죠.
<독립신문> 영인본(4292년판)을 보니 리기붕을 비롯해 서울대총장까지 추천글을 실었더군요. 그런데 서울대총장과 영인본을 펴낸 이가 "리승만 박사 탄신 84주년을 기념하며 펴낸다"는 말을 써놓아 보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분명히 <독립신문>을 만들 때 공을 가장 많이 들인 이는 서재필 씨와 주시경 씨인데 이 이야기는 거의 들어가 있지 않고 오로지 `리승만 박사' `리승만 대통령' 찬양이 가득하더군요.
책을 보고 있노라니 오토바이를 끌고 어떤 아저씨가 책들을 가지고 옵니다. 이 모습은 용산 <뿌리서점>에서 자주 보는 모습인데-중간상인분들이 책을 떼오는 모습입니다- 번잡한 시내 복판에서 길바닥에 두 사람이 책을 펼쳐놓고 책 상태와 값어치를 따지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보며 어떤 책들을 아저씨가 사들이나 보는 재미도 괜찮네요.
이때 오토바이 아저씨가 떼온 책은 거의 모두 70-80년대 시모음입니다. 저는 여기서 도종환 씨 첫 시모음 <고무디 마을에서, 창비(1985)>와 <하 일-주민등록, 민음사(1985)> <정일근-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비(1987)> 셋을 골랐습니다.
이 책들은 어느 도서관과 개인 병원에서 손님이 기다리면서 보는 책들이었는데 여기까지 왔군요. 도서관에서 나온 시모음 뒤에 꽂힌 `도서열람표'를 보니 아무도 이 책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헉. 아마 아무도 빌려 읽지 않은 책들이라 도서관에서 더는 둘 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느껴서 처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화당서점>을 처음 찾아간 저에게 반가운 책은 <김재영 사진/김종성 글-검은 산 검은 하늘, 눈빛(1991)>과 <김호성-주몽, 평양출판사(1997)> 두 권입니다.
<검은 산 검은 하늘>은 눈빛 출판사에서 `사진과 사회'라는 이름 아래 기획해서 펴낸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현장보고서입니다. <검은 산 검은 하늘>은 태백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탄광촌 현실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서 지난 역사와 현실, 앞으로 탄광촌에 희망이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눈빛은 이 책 말고도 <분단 풍경>과 <원천봉쇄>라는 고발사진책을 냈고 <제7의 인간>이라는 유럽 저개발국 노동자들 다큐멘타리 사진소설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몽>이란 책. 이 책은 `평양출판사'란 글자가 책더미 틈바구니에서 언뜻 보여서 꺼낸 책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진짜 휴전선을 건너온 책입니다. 허허. 이 책을 셈치를 때 아저씨는 "세상 많이 좋아졌지? 자네나 나나 끌려가고 벌금 물어야 했을 텐데. 세상 많이 좋아졌어" 하십니다. 영인본이라 해도 북녘 책을 사지도 팔지도 못한 때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빨갱이 몰이를 할 때마다 책마저 수난을 받았고요. 그러나 우리는 남북 화합을 생각하고 남북이 서로 문화를 주고받고 서로 낸 책도 읽어가면서 서로 마음과 마음 사이에 쌓인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남은 북에서 낸 책을 읽고 북은 남에서 낸 책을 찾아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송두율 교수는 "독일은 하나되기 앞서 열 해 동안 문화 교류가 활발했음에도 통일을 이룬 뒤에 마음의 장벽 문제가 그렇게도 크게 문제가 되었는데 문화 교류가 전혀 없는 남북한은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남한-북조선이 서로 이루어낸 문화유산인 책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문화당서점>은 1975년부터 헌책방을 꾸려왔습니다. 스물여섯 해라는 햇수는 제 나이와도 같네요. 스물여섯 해라는 햇수 동안 헌책방을 꾸리며 참으로 수많은 책들을 사고 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죠. 아저씨는 여러 헌책방들을 많이 알고 계시더군요. 제가 책을 보고 있을 때는 멀리 전주에서 성문종합영어를 비롯한 수험서들을 사러 온 분도 계셨지요. 앞으로도 <문화당서점>에도 많은 책들이 드나들 테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갈 겁니다. <문화당서점>에 오고갈 많은 책들 가운데 한 권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이 손에 쥘 수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연신내란 동네는 버스도 806번과 72-1번만 가고 지하철 3호선도 거의 끝쪽에 가까와 찾아가기가 쉽지 않겠더군요. 그러나 맑지 않은 서울 공기가 연신내만 가도 퍽 맑게 다가오고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노라 생각하며 찾아가면 괜찮으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최종규 기자가 내는 소식지 <헌책사랑>을 받아보실 분은 인터넷편지로 연락해 주십시오. http://pen.nownuri.net 으로 찾아가면 더 많은 헌책방 이야기 글을 찾아 읽으실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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