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일까.
검찰이 11일 밝힌 선거법 관련 기소 상황을 보면 여당에게는 관대하고 야당에게는 가혹한 법적용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초 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한 건수는 민주당이 184건, 한나라당이 48건으로, 거의 4배에 가까운 차이가 났다. 그러나 정작 검찰이 기소한 현역 의원들의 숫자는 민주당이 9명, 한나라당이 15명, 자민련이 1명으로, 정반대로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당선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 상황만 놓고 본다면 여당이 야당에 비해 준법선거에 충실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굳이 야당측의 항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명백한 편파기소라는 비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선관위의 고발 건수가 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당에 대한 선관위의 고발 건수가 월등히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여당이 혼탁선거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지도 않은데 선관위가 여당을 야당의 4배에 가깝게 고발했다가는 무슨 난리가 날 지 모르는 일 아니었겠는가.
선관위의 고발 건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식적인 체감지수이다. 물론 16대 총선 당시 혼탁과열 분위기속에서 여야 간의 탈법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탈법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여야 모두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주로 집권당에 의한 혼탁선거 시비였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당보다는 여당측에 의한 혼탁상이 많이 들려왔고, 이는 어느 한곳이 아니라 적어도 수도권 지역에서는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특히 중앙당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많은 자금지원을 받았던 여당 후보들의 경우, 법으로 금지된 행위에 많은 돈을 쓰고 있는 사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향응제공, 관광여행, 선물돌리기, 운동원들에 대한 자금살포 등의 사례가 도처에서 속출했던 것이다.
이미 여러차례의 재보궐선거를 통해 '돈선거'의 위력을 맛본 여당측이 그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돈선거'에 관한한 여당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했다. 중앙당에서 탈법교육이 실시되었다는 윤철상 의원의 발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16대 총선에서 여당의 탈법이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졌음은 이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당은 선거법 앞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선거법보다 위에 있는 집권당의 위력을 과시했던 윤철상 의원의 발언이 생각난다. 야당 당선자는 15명 기소되고, 정작 여당 당선자는 9명만 기소된 결과는, 그의 말이 역시 허튼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야당은 명함만 배포해도 기소되고 여당은 불법자금을 살포해도 무사하더라는 인식이 자리하는한, 선거법은 권위를 갖고 집행될 수가 없다. 그저 검찰의 입맛에 따라 힘없고 재수없는 사람만 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는 상태에서는 선거법도, 선관위도, 검찰도 모두 제 자리를 찾기 힘들다.
이제 13일이면 선거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다. 16대 총선에 대한 뒷처리 역시 편파기소의 시비속에서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윤철상 의원의 발언파문도 결국 이렇게 묻히고 마는 것인가.
정권은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현실이 우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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